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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병실에서 7

by 장돌뱅이. 2022. 8. 22.


고인 물 같은 병실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

아내와 손자 사진을 함께 보며 즐거웠던 기억을 되살려 본다.
언젠가 너무 늦게 자는 손자에게 아내가 충고를 했다.
"있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키가 크는 거야."
어린 손자는 별안간 아내의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눈으로 몇 차례 훑어보았다.
그리고 판을 뒤집는 한 마디를 던졌다.
"할머니도 잠을 늦게 잤나 보네."
(유감스럽게도 아내는 키가 작다.)

아내와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낄낄거린다.
아내완 쿵작이 잘 맞아 '티키타카'가 길게 이어지곤 한다.
아내의 재치는 늘 나를 압도한다.
아내는 '내가 말을 잘하는 건 당신한테 뿐이야.' 하고
나는 아내에게 '그래서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니깐!' 하고 말한다.
아내는 얼굴 화끈거린다고 말리지만 나는 병실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아내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도 결국 병실에서의 시간이란 지루한 기다림이다.
아내가 잘 견뎌주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 내 사랑이여 - 하고 네가 말하면,
- 내 사랑이여 - 라고 나는 대답했네.
- 눈이 내리네 - 하고 네가 말하면,
- 눈이 내리네 - 라고 나는 대답했네.

- 아직도 - 하고 네가 말하면,
- 아직도 - 라고 나는 대답했네.
- 이렇게 - 하고 네가 말하면,
- 이렇게 - 라고 나는 대답했네.

그 뒤, 너는 말했네 - 사랑해.
나는 대답했네 - 나는 너보다 더 많이 - 라고.
- 여름도 가는군 - 네가 내게 말하자,
-이제 가을이야 - 라고 나는 대답했네,
어느 날 마침내 너는 이렇게 말했네.
-오,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데······
그래서 나는 대답했네.
- 다시 한번 말해봐 ······ 다시 한번 더 ······
(그것은 어느 가을날, 커다란 노을이 눈부신 저녁이었네.)

- 프랑시스 잠, 「슬픈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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