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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병실에서 11

by 장돌뱅이. 2022. 8. 27.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는 버림받은 4명의 아이들이 나온다.
미혼모인 엄마는 크리스마스까지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가 벚꽃이 피어도 연락이 없다.
아이들의 아빠는 각각 다르다. 그러나 네 명의 아빠 중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많은 걸 싫어하는 집주인의 눈을 피해 이사 올 때 어린 동생들을 가방 속에 넣어 오기도 해서 아이들은 소리를 낼 수도 없고 베란다에 나가볼 수도 없다. 세상과 끈을 이어주고 동생들을 돌보는 건 오직 12살의 어린 장남의 몫이다.

출생 신고도 되어 있지 않아 학교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 존재다. 그러나 더 이상 비참할 수 없고 희망이라곤 좀처럼 보이지 않는 참혹한 조건 속에서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밝고 긍정적이다. 놀라운 생명력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햇빛이 훤하니 마음도 다 훤해지네."
우중충한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병실 안을 밝히는 오후, 옆 자리의 할머니가 커튼을 걷으며 밝게 웃으셨다. 알고보니 이번 입원 말고도 지난 몇 년간 겪으신 병치레가 자못 화려하신(?) 분이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를 전하는 표정과 어투가 어둡지 않고 호랑이와 곶감의 옛날이야기처럼 구수하다. 할머닌 2달여의 긴 병원 순례가 다음 주로 끝난다. 두툼하던 발목의 붕대도 가볍게 바꾸었다. 그래서인지 귀향을 앞둔 설렘이 말과 몸짓에서 묻어난다.

회진과 식사, 그리고 재활을 위한 운동이 끝나면 침대에 누운 채 환자들 사이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두서없이 오고 간다. 그럴 때면 육신의 고통과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거추장스러움도 잠시 잊은 듯 병실 안이 평화로워진다. 병실은 수술과 주사와 붕대와 약에 앞서 사랑스러운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털고 일어서기까지 저마다 안고 있는 숙제가 만만치 않지만, 영화 속 아이들이 그랬듯, 삶의 의지가 있는 한 끝끝내 어둡기만 한 곳은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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