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는 버림받은 4명의 아이들이 나온다. 미혼모인 엄마는 크리스마스까지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가 벚꽃이 피어도 연락이 없다. 아이들의 아빠는 각각 다르다. 그러나 네 명의 아빠 중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많은 걸 싫어하는 집주인의 눈을 피해 이사 올 때 어린 동생들을 가방 속에 넣어 오기도 해서 아이들은 소리를 낼 수도 없고 베란다에 나가볼 수도 없다. 세상과 끈을 이어주고 동생들을 돌보는 건 오직 12살의 어린 장남의 몫이다.
출생 신고도 되어 있지 않아 학교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 존재다. 그러나 더 이상 비참할 수 없고 희망이라곤 좀처럼 보이지 않는 참혹한 조건 속에서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밝고 긍정적이다. 놀라운 생명력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햇빛이 훤하니 마음도 다 훤해지네." 우중충한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병실 안을 밝히는 오후, 옆 자리의 할머니가 커튼을 걷으며 밝게 웃으셨다. 알고보니 이번 입원 말고도 지난 몇 년간 겪으신 병치레가 자못 화려하신(?) 분이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를 전하는 표정과 어투가 어둡지 않고 호랑이와 곶감의 옛날이야기처럼 구수하다. 할머닌 2달여의 긴 병원 순례가 다음 주로 끝난다. 두툼하던 발목의 붕대도 가볍게 바꾸었다. 그래서인지 귀향을 앞둔 설렘이 말과 몸짓에서 묻어난다.
회진과 식사, 그리고 재활을 위한 운동이 끝나면 침대에 누운 채 환자들 사이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두서없이 오고 간다. 그럴 때면 육신의 고통과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거추장스러움도 잠시 잊은 듯 병실 안이 평화로워진다. 병실은 수술과 주사와 붕대와 약에 앞서 사랑스러운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털고 일어서기까지 저마다 안고 있는 숙제가 만만치 않지만, 영화 속 아이들이 그랬듯, 삶의 의지가 있는 한 끝끝내 어둡기만 한 곳은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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