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책『아픔이 길이 되려면』

by 장돌뱅이. 2022. 8. 27.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픕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습니다."

몇 년 사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가 남긴(남기고 있는) 고통과 상처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지진이나 해일, 홍수와 가뭄, 더위와 한파 같은 자연재해 역시 '약한 사람들'에게 혹독하게 작용한다.

의료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이 보장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실업과 재취업 정책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해고로 고통받다 자살하는 노동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경제 위기 때 복지 예산을 축소하는 사회에서는 치료가 어렵지 않는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
'사회의 시간'은 인간관계의, 계급 관계의, 역사와 사회 구조의, 제도와 문화의 총체이다.

우리가 질병 자체만이 아니라 질병의 "원인의 원인(the cause of the causes) '이 되는, '사회의 시간' 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아르헨티나의 의학도였던 체게바라가 혁명가가 된 것도 오토바이로 남미를 여행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민중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의 원인'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정신과 의사였던 알제리의 프란츠 파농이 독립전쟁의 전사가 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 개인의 우연한(?) 질병이라 하더라고 발병에서 치유까지 국가가 자유로울 수 있는 영역은 없다. 저자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으로서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국내외 여러 사례들을 소개하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과 역할을 모색하는 일환으로 소방공무원, 삼성반도체 노동자, 세월호 생존 학생, 성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등을 만난다.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보상-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의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억해야 합니다. 5·18광주민주화 항쟁 사망자의 유가족이, 77일 옥쇄파업에 참여했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세월호 유가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진단을 받고 아프고 괴로워한다고 해서, 그러한 진단과 의학적 치료만으로 그들의 상처 입은 몸이 겪는 고통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빨갱이' 낙인으로 인해 오랜 기간 죽음에대해 말할 수조차 없었던 그 사회적 낙인이, 회계조작에 다른 폭력적인 정리해고가, 풀리지 않는 의문들로 가득 찬 가족의 죽음과 은폐된 진실이 그들의 고통을 이루는 핵심이니까요."

삼성 반도체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를 다룬 영화

책에 나와 있는 많은 사례 중 특히 원진레이온은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적·경제적·정치적 모순이 '원인의 원인'으로 집약되어 있는 대표적인 경우인 것 같아 주목된다. 지금도 식민지 청산이란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걸림돌이 되고 있는 박정희 정권의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일본의 동양레이온은 자신들이 사용했던 기계를 전쟁배상 물품으로 한국에 넘긴다. 1964년 당시에도 이미 "오래된 기계라서 서류도 파기되어 가격도 알 수 없던" 기계를 높은 가격인 36억 엔에 한국의 원진레이온에 판매한 것이다. 이 대금은 한국의 대일청구권 3억 불에 포함된 것이었다.

일본은 경쟁에서 밀리면서 수익모델이 악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황화탄소(CS₂) 중독이라는 직업병을 유발한 유해 설비를 높은 가격으로 한국에 넘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측은 이황화탄소 중독에 대하여 통보하지 않았다. 이 노후 설비로 한국은 1966년부터 1991년까지 레이온을 생산하였고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회사는 전기세를 아끼겠다고 환기창을 꺼놓기까지 했다. 그 결과 2017년 현재까지 9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이황화탄소 중독 진단을 받았다. 이황화탄소 중독은 조현병과 뇌경색, 다발성 신경명, 협심증, 신부전증 등을 일으킨다고 한다.

원진레이온이 페업하면서 설비는 1994년 중국 단동시의 회사로 50억 원에 매각되었다. 최근에는 다시 북한으로 이전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공해와 중독이 '수출'되면서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연쇄 고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해주지 않는다면 "누군가 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

책에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원진레이온 사태가 일반에 알려지기 직전에 발생한 문송면의 비극도 우리 사회의 가난과 생명 경시의 정도를 가늠하게 했던 충격적인 일이었다.

73년 2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문송면은 87년 12월 5일 영등포의 한 작은 공장에 취업하여 상경을 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희망이 상경의 한 이유였다. 그러나 그는 그로부터 채 일년이 못 되는 88년 7월 2일 돌연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사인은 수은중독이었다. 그의 일은 수은 수증기가 가득찬 작업실에서 액체 수은을 온도계에 주입하는 일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좀 넘었을 때부터 잠이 오지 않고, 식욕이 떨어졌다. 고열에 두통도 겹쳐왔다. 88년 1월 20일 몸이 아프니 쉴 수 있도록 휴직계를 내도록 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했지만 회사는 ‘공장 근무로 인한 상해가 아니’라는 각서를 요구했다. 그는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두 달만 참으면 고등학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보름 만에 다시 앓아누웠다. 그는 휴직계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 달치가 조금 넘은 임금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의료보험료 1,900원과 식대 2만 3,850원을 제한 7만 5,050원이었다.

고향집에서 그는 전신 발작을 일으켰다.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서야 그의 혈액에 과도한 수은과 구리가 함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을 알게 된 진보적 의료인들이 공장에 항의하고 정부에 산재신청을 했지만 신청서는 반려되었다. 그의 일이 동아일보에 보도되고 공론화되면서 정치인들이 그의 병실을 찾았고 국회 노동위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되었다. 마침내 88년 6월 29일은 노동부가 그의 산재를 인정했지만 문송면은 사흘 뒤 만 15세의 나이로 눈을 감고 말았다. 그의 부고와 장례를 알리는 "송면이가 갑니다"라는 (한겨레)신문 기사에 가슴이 먹먹해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송면과 원진레이온의 아픔들을 딛고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온전히 위로와 희망의 '길'을 닦아왔을까?
그래서 우리 사회는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얼마나 함께 대응해줄 수 있을까?
또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얼마나 깊게 공감하며 연대의 그물망을 만들어 내고 있을까?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실에서 13  (2) 2022.08.30
병실에서 12  (0) 2022.08.28
병실에서 11  (2) 2022.08.27
병실에서 10  (0) 2022.08.26
병실에서 9  (0) 2022.08.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