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픕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습니다."
몇 년 사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가 남긴(남기고 있는) 고통과 상처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지진이나 해일, 홍수와 가뭄, 더위와 한파 같은 자연재해 역시 '약한 사람들'에게 혹독하게 작용한다.
의료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이 보장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실업과 재취업 정책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해고로 고통받다 자살하는 노동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경제 위기 때 복지 예산을 축소하는 사회에서는 치료가 어렵지 않는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
'사회의 시간'은 인간관계의, 계급 관계의, 역사와 사회 구조의, 제도와 문화의 총체이다.
우리가 질병 자체만이 아니라 질병의 "원인의 원인(the cause of the causes) '이 되는, '사회의 시간' 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아르헨티나의 의학도였던 체게바라가 혁명가가 된 것도 오토바이로 남미를 여행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민중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의 원인'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정신과 의사였던 알제리의 프란츠 파농이 독립전쟁의 전사가 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 개인의 우연한(?) 질병이라 하더라고 발병에서 치유까지 국가가 자유로울 수 있는 영역은 없다. 저자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으로서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국내외 여러 사례들을 소개하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과 역할을 모색하는 일환으로 소방공무원, 삼성반도체 노동자, 세월호 생존 학생, 성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등을 만난다.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보상-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의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억해야 합니다. 5·18광주민주화 항쟁 사망자의 유가족이, 77일 옥쇄파업에 참여했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세월호 유가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진단을 받고 아프고 괴로워한다고 해서, 그러한 진단과 의학적 치료만으로 그들의 상처 입은 몸이 겪는 고통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빨갱이' 낙인으로 인해 오랜 기간 죽음에대해 말할 수조차 없었던 그 사회적 낙인이, 회계조작에 다른 폭력적인 정리해고가, 풀리지 않는 의문들로 가득 찬 가족의 죽음과 은폐된 진실이 그들의 고통을 이루는 핵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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