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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밥2

제주 함덕 6 내 어렸을 적 고향에는 신비로운 산이 하나 있었다. 아무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영산이었다. 영산은 낮에 보이지 않았다. 산허리까지 잠긴 짙은 안개와 그 위를 덮은 구름으로 하여 영산은 어렴풋이 그 있는 곳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영산은 밤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구름 없이 맑은 밤하늘 달빛 속에 또는 별빛 속에 거므스레 그 모습을 나타내는 수도 있지만 그 모양이 어떠하며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영산이 불현듯 보고 싶어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더니 이상하게도 영산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미 낯설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산은 이곳에 없다고 한다. - 김광규, 「영산(靈山)」- 구름 속에 숨은 제주의 영산 한라산을 바라보다 떠오른 시. 세월의 구름 .. 2022. 10. 24.
고구마 죽과 밥 앞선 감자 관련 글에 인용한 공선옥 작가의 책 『행복한 만찬』을 읽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했다. 생각없이 대했던 흔한 먹을거리들에게서 작가는 가난한 지난 추억들을 더듬어 풍요의 시대가 놓쳐버린 어떤 절실한 가치들을 잔잔하게 복원해내고 있었다. 모든 음식은 추억으로 완성된다고 하던가. 아내에게도 읽기를 권했더니 나와 같았는지 단숨에 읽어 내렸다. 공선옥의 책에서 다시 고구마에 대한 글을 인용해 본다. 옛날에는 참 쌀을 아꼈다. 나 또한 쌀같이 귀한 것이 세상에는 없는 줄 알았다. 귀하고 귀한 것이 쌀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쌀을 아껴 먹었다.(······) 오지단지 안에 쌀을 가득 담아 두고도 겨울이면 사람들은 언제나 하루 한 끼쯤은 고구마로 때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루 삼시 세끼를 모.. 2013.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