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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기3

눈이 온 설날 아침의 기억 빈 마당이 소복소복 눈 위를 설빔 운동화 처음 신고 대문까지 그냥 한 번 걸어갔다 돌아오니 사박사박 발자국 마당에 찍힌 그래 설날 아침에 남겨진 오래된 기록 내 마음속 설날 아침에는 늘 그해처럼 소복소복 눈이 내려 쌓이고 사박사박 첫 발자국을 내고 마당에 내린 흰 눈은 쌀처럼 더러 설레고 마당에 내린 흰 눈은 소금처럼 더러 복스럽고 - 고운기, 「눈이 온 설날 아침의 기억」 - 설빔은 설과 '비음'이 합친 말이다. '비음'은 명절이나 잔치 때 새 옷을 입는 일을 말한다. '비음'이 줄어서 빔이 되었다. 표준어는 빔이다. 설빔에는 묵은 것을 버리고 새해 새 출발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설날이라고 특별히 옷이나 운동화를 새로 사는 일이 드문 것 같으니 설빔이라는 말도 점차 생활 속에서 사라질.. 2022. 1. 31.
내가 읽은 쉬운 시 91 - 고운기의「비빔밥」 우리나라는 비빔밥의 천국이다. 생각해보면 비벼먹지 않는 것이 없다. 여러가지 나물(채소)과 달걀 지단과 볶은 소고기를 고명으로 얹어내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비빔밥은 맛 이전에 색깔의 조합도 아름답다. '꽃밥'(花飯)이라는 별명을 붙일만하다. 이외에 육회비빔밥, 멍게비빔밥, 꼬막비빔밥, 낙지비빔밥, 회비빔밥, 보리열무김치비빔밤, 산채비빔밥, 생채비빔밤, 야채비빔밥, 두부비빔밥 등등 - 뭐든 넣고 고추장에 참기름이나 들기름 혹은 간장양념장과 함께 썩썩 비비기만 하면 된다. 버터도 우리나라에 와서 '빠다비빔밥'의 재료로 쓰였다. 어린 시절 독수리가 그려진 기름종이에 싸인 미제 빠다를 따근한 밥에 넣고 달걀과 장조림 간장을 넣어 비벼 먹던 기억이 있다. 옛 문헌에는 요즈음은 보기 드문 종류의.. 2019. 3. 26.
내가 읽은 쉬운 시 26 - 고운기의「좋겠다」 설날이 가까워오네요. 명절이 부담스러워야 어른이라는데 전 아직 추석이며 설날이 좋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혹은 사정이 있어 타향에서 명절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고운기 시인의 시를 보냅니다, 저물 무렵 먼 도시의 번호판을 단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빠져 나간다 가는 동안 밤을 맞더라도 집으로 가는 길이라면 좋겠다 버스에 탄 사람 몇이 먼 도시의 눈빛처럼 보이는데 손님 드문 텅 빈 버스처럼 흐린 눈빛이라도 집으로 가는 길이라면 좋겠다 집에는 옛날의 숟가락이 소담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15.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