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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91 - 고운기의「비빔밥」

by 장돌뱅이. 2019. 3. 26.




<한 가지가 빠져도 맛있는 비빔밥>
우리나라는 비빔밥의 천국이다.
생각해보면 비벼먹지 않는 것이 없다.
여러가지 나물(채소)과 달걀 지단과 볶은 고기를 고명으로 얹어내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비빔밥은 맛 이전에
색깔의 조합도 아름답다. '꽃밥'(花飯)이라는 별명을 붙일만하다.

이외에 
육회비빔밥, 멍게비빔밥, 꼬막비빔밥, 낙지비빔밥, 회비빔밥,  보리열무김치비빔밤, 산채비빔밥, 생채비빔밤,
야채비빔밥, 두부비빔밥 등등 -
뭐든 넣고 고추장에 참기름이나 들기름 혹은 간장양념장과 함께 썩썩 비비기만 하면  된다.
버터도 우리나라에 와서 '빠다비빔밥'의 재료로 쓰였다. 어린 시절 독수리가 그려진 기름종이에 싸인 미제 빠다를 따근한
밥에 넣고 달걀과 장조림 간장을 넣어
비벼 먹던 기억이 있다.

옛 문헌에는 요즈음은 보기 드문 종류의 비빔밥갈치, 준치, 숭어 등에 겨자 장을 넣은 비빔밥, 구운 새끼 전어를 넣은 비빔밥,
큰 새우 말린 것, 작은 새우, 쌀새우를 넣은 비빔밥, 황주(황해도)의 작은 새우젓갈 비빔밥, 새우 알 비빔밥, 게장 비빔밥, 달래
비빔밥, 생호과 비빔밥,
기름 발라 구운 김 가루 비빔밥, 미초장 비빔밥, 볶은 콩 비빔밥 -도 나온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비빔밥은 세상에서 우리나라에 밖에 없다.
일본은 우나기동, 가츠동 등등의 덮밥에 솥밥(釜飯)도 있지만 떠먹지 비벼 먹진 않는다. 
인도네시아의 나시짬뿌르(내ASI CAMPUR)는 접시에 흰 밥을 가운데에 담고 그 주변에 여러가지 반찬을 둘러놓는
것으로 비빔밥은 아니다. 물론 나는 인도네시아를 여행할 때 종종 별도 그릇을 달라고 하여 그것을 비벼 먹곤 한다. 

비빔밥은 '비빔'이라는 행위를 통해 얻는 '섞임'의 맛이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재료들이 자신만이 갖고 있는 맛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나같은 하룻강아지가 구현할 수는 없는 맛이겠다. 그래도 어차피 범 무서운 줄 모르므로 배운대로 재연을 해봤다. 

청포묵과 달걀지단, 도라지, 고사리와 소고기를 다듬고 채를 썰볶았다.
특히 노노스쿨에서는 번번히 실패하던 호박의 돌려깎기와 흰자와 노른자의 지단을 이번엔 완벽하게 성공했다.
나는 신이 나서 증거사진을 찍으며 영화 "벤허"를 만든 윌리엄 와일러 감독처럼 소리를 쳤다.
"오 하느님, 정말 이 돌려깍기와 지단을 제가 만들었습니까!"

이어 다시마를 튀겨 부각을 만들고 다진 소고기와 고추장을 섞어 약고추장도 만들었다.
그리고 갓지은 밥에 레시피대로 색배합을 맞춰가며 고명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약고추장 위에
잘게 부신 부각을 올려 모양을 낸 '비빔'밥 아닌 '비빌' 밥을 꾸며 식탁 위에 내놓았다.
식사 전후에 아내가 두번의 엄지를 세워 주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부엌 조리대 한쪽에 빼놓고 넣지 않은 청포묵을 발견했다.
"앗! 이거 뭐야. 어쩐지 뭔가 허전하더라니."
내가 비명을 지르자 아내가 경쾌하게 답을 주었다.
"괜찮아. 충분히 맛있었어. 서운하면 다 넣어서 한번 더 해주면 돼잖아!"


혼자일 때 먹을거리치고 비빔밥만 한 게 없다

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까
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무려져
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러 간다
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
적막한 시간의 식사여
나 또한 어느 큰 대접 속 비빔밥 재료인 줄 안다
나를 잡수실 세월이여, 그대도 혼자인가
그대도 내가 반가운가
               -고운기의 시,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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