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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93 - 신경림의「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by 장돌뱅이. 2019. 3. 30.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이것이

어머니가 서른해 동안 서울 살면서 오간 길이다.

약방에 들러 소화제를 사고

떡집을 지나다가 잠깐 다리쉼을 하고

동향인 언덕바지 방앗간 주인과 고향 소식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엔 동태만을 파는 좌판 할머니한테 들른다.

그이 아들은 어머니의 손자와 친구여서

둘은 서로 아들 자랑 손자 자랑도 하고 험담도 하고

그러다보면 한나절이 가고,

동태 두어마리 사들고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면

어머니의 하루는 저물었다.

강남에 사는 딸과 아들한테 한번 가는 일이 없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오가면서도

만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듣고 보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더 멀리 갈 일이 무엇이냐는 것일 텐데.

 

그 길보다 백배 천배는 더 먼,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그 고향 뒷산에 가서 묻혔다.

집에서 언덕밭까지 다니던 길이 내려다보이는 곳,

마을길을 지나 신작로를 질러 개울을 건너 언덕밭까지,

꽃도 구경하고 새소리도 듣고 물고기도 들여다보면서

고향살이 서른해 동안 어머니는 오직 이 길만을 오갔다.

등 너머 사는 동생한테서

놀러 가라고 간곡한 기별이 와도 가지 않았다.

이 길만 오가면서도 어머니는 아름다운 것

신기한 것 지천으로 보았을 게다.

 

어려서부터 집에 붙어 있지 못하고

미군 부대를 따라 떠돌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먼 지방을 헤매기도 하면서,

어머니가 본 것 수천배 수만배를 보면서,

나는 나 혼자만 너무 많은 것을 보는 것을 죄스러워했다.

하지만 일흔이 훨씬 넘어

어머니가 다니던 그 길을 걸으면서,

약방도 떡집도 방앗간도 동태 좌판도 없어진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걸으면서,

마을길도 신작로도 개울도 없어진

고향집에서 언덕밭까지의 길을 내려다보면서,

메데진에서 디트로이트에서 이스탄불에서 끼예프에서

내가 볼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어쩌면 어머니가 보고 갔다는 걸 비로소 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서른해 동안 어머니가 오간 길은 이곳뿐이지만.


어디까지 가야 여행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반드시 비행기나 자동차에 몸을 묶고 하루에는 돌아오기 힘든 먼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일까?
집에서 멀어질수록 여행이 주는 만남과 경험과 감동의 폭은 비례해서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일까?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볼거리와 먹거리와 할거리가 많을수록 여행은 의미있어지는 것일까? 
집에서 가까운 공원을 천천히 돌아오는 일상 속의 짧은 산책이나,
아니면 시 속의 어머니처럼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오간 발걸음은 여행으로 규정할 수 없는 행위일까?

1790년 프랑스인 사비에르 드 매스트르라는 사람은 자신의 침실을 '여행'하고 
『나의 침실 여행(Journey around My Bedroom』이란 제목의 책까지 출판했다.
그는 문을 잠그고 화려한 색의 파자마로 갈아입고 편안히 앉아 방안을 찬찬히 바라보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가구와 침대를 오래 바라보며 우아함 같은 특징을 찾아내거나 그곳에서 사랑과 출세를 꿈꾸던 시절을 추억하였다.
몸의 움직임이나 물리적 거리보다는 머릿속 상상으로 다닌 여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798년에는 그 속편이라 할 『나의 침실 야간 탐험(Noturnal Expedition around My Bedroom』이란 책도 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감히 여행을 떠나오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여행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여행은 생각도 해본
일이 없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예를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아무리 게으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돈도 노력도
들지 않는 즐거움을 찾아 출발하는 일을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라고 자신의 여행을 설명했다.

적어도 여행이 물리적 이동거리의 멀고 가까움이나 시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규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가까운 공원을 걷는 일상이나 익숙한 나의 침실을 가만히 바라보는 행위는 익숙한 장소에서도
다른 생각으로 교감하는 시간이면
다른 형태의 여행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시 속 어머니의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의 걸음은 더 나가 삶이라는 길고 먼 여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삶은, 여행처럼 혹은 여행보다, 많이 보면서도 오래 보는 것이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도 깊이 관계하는 것이며,
관계 속에서 선택 당하거나 선택하는 것이며, 선택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며, 무엇인가를 벗어난
신기함을
넘어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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