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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3

메멘토 모리 보름 새에 친구 어머니 두 분이 90대의 나이로 돌아가셨다.모두 건강하셨다가 한 분은 입원한 지 10여 일 만에, 그리고 또 다른 분은 급작스레 상태가 위독해지셔서 몇 시간 만에 눈을 감으셨다. 장례식장 분위기는 침울하지 않았다.조문을 마친 뒷자리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왔다."이별의 기억이 좋을 만큼 알맞게 아프시고 돌아가셨네.""복이 많으셔서 마지막도 큰 고생하지 않으셨네.""호상이지 뭐."'알맞게', '복이 많으셔서', '호상'이라······.남은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악의 없이 정형화된 의도이고 말이다.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이럴 때 '세상에 사람이 죽었는데 호상이 어딨어?'라고 소리를 지르던 강풀의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만석할배가 떠오른다. 할배는 떠난 사람을, 죽기 위해서가 아.. 2025. 3. 9.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도' 눈이 온다 오늘은 눈이 내릴 거라고 한다. 일부 지역에는 대설주의보까지 있는 모양이다. 3월도 하순인데 눈이라니! 어제 저녁 때마침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는 김춘수의 시를 읽었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면서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시인이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을 보고 쓴 시라고 한다. 그림에는 눈이 내리지 않으니 .. 2022. 3. 19.
내가 읽은 쉬운 시 5 - 김춘수의 「꽃」 *위 그림 : GRANVILLE REDMOND 1926년 작, 「CALIFORNIA POPPY FIELD」 내가 처음 읽은 시가 이발소 거울 위에 붙어있던 푸쉬킨의 시였듯이 반드시 시집을 통하지 않아도 경험한 시는 누구에게나 많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있는 요즈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의식을 하든 안 하든 시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왔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면서 김춘수의 시, 「꽃」을 읽어보거나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꽃」은 책받침이나 공책 겉표지에 장식용으로 자주 쓰여 있었고, “별이 빛나는 밤에”나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같은 심야 라디오 방송의 애청자 엽서를 통해서도 흘러나왔다. 군대 시절, 여성과 펜팔을 나누던 고참이 ‘뭐 폼 나는 시 같.. 2014.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