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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3

이름 부르는 일 여행에서 돌아와 서둘러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작은 친구는 발을 동동 구르며 격렬하게 좋아했고, 그 모습을 본 큰 친구는 자못 어른스럽게 말을 했다. "아주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어." 잠에서 깨자마자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어린 강아지 같은 얼굴로 내게 안기는 작은 친구와, 도미노(Domino)나 우노(Uno) 등 작은 친구가 함께 할 수 없는 놀이를 기대하는 큰 친구 사이를 오고 가며 일박이일을 지치도록 놀았다. 사실 여행의 거의 모든 순간과 모든 대상에 아내와 나는 친구들을 대입시키고 평가했다. "이 옷이 친구들에게 어울릴까?" "이 음식은 친구들도 좋아하겠다." "친구가 망고를 무척 잘 먹었는데······ 두리안도 먹을 수 있을까?" "여기 수영장은 친구들이 놀기에 좀 깊다. 친구들과는 유아풀에 .. 2023. 4. 27.
내일부턴 낮이 길어진다 동짓날이다. "팥죽 해 먹을까?" 나의 말에 아내는 올해는 애동지라서 팥죽 대신에 팥떡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검색을 해보았다.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12월 21일 오늘은 음력으로 11월 7일이라 애동지가 된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지만,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팥떡을 먹는다. 애동지에 팥죽을 먹으면 아이들이 병에 잘 걸리고 나쁜 일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 단골 떡집에 갔더니 팥시루떡이 다 팔려 추가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나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애동지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겨울이 한참 남았지만, 동지는 겨울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기분을 느끼게 한다. 1년 중 밤.. 2020. 12. 21.
내가 읽은 쉬운 시 20 - 박남준의「매미의 옛 몸」 여름이다. 덥다. 태풍과 장마 사이 잠시 맑은 하늘은 이른 아침부터 열기를 내뿜는다. 창문을 여니 올 첫 매미 소리가 맹렬하다. 몸부대끼는 출근길의 지하철 안이 또한 열기와 맹렬이다. 여름엔 여름처럼 살 일이다. 매미는 여전하다 아랑곳없이 울어대다니 하긴 그 얼마나 오랜 날들을 어두운 땅속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로 굼벵이로 살아왔던가 날개가 돋아나기까지의 오랜 시간을 생각한다 금선탈각(金蟬脫殼) 나뭇가지 여기저기에 굼벵이의 몸을 벗고 날아오른 등이 찢긴 허물들 거기 바람이 머물 것이다 그 빈 몸속에 각질로 굳은 옛 매미의 몸속에 휘파람처럼 바람이 머물다 갈 것이다 날개처럼 며칠 남지 않은 저 시한부의 절규처럼 그 노래처럼 반짝이며 붙박여 있는 삶이 어쩌면 빈 껍질일지라도 그렇게 꼭 움켜쥐어야 하는 것이라는 듯 2014.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