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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2

전라도의 절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습니다사랑도 나를 가득하게 하지 못하여고통과 결핍으로 충만하던 때 나는 쫓기듯 땅끝 작은 절에 짐을 부렸습니다 새심당 마루 끝 방문을 열면그 안에 가득하던 나무기둥 냄새창호지 냄새, 다 타버린 향 냄새흙벽에 기댄 몸은 살붙이처럼아랫배 깊숙이 그 냄새들을 보듬었습니다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고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아물지 못한 상실감으로 한 시절을오래, 휘청였습니다 ······색즉시고옹공즉시새액수사앙행식역부우여시이사리자아아시이제법공상불생불며얼 ······ 불생불멸······ 불생불멸······ 불생불멸······ 꽃살문 너머반야심경이 물결처럼 출렁이면나는 언제나 이 대목에서 목이 메곤 하였는데 그리운 이의 한 생애가잠시 내 손등에 앉았다가 포르르.. 2020. 7. 30.
지난 국토여행기 31 - 초가을에 만난 두 가지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아이를 위해 나무와 꽃과 풀의 이름을 많이 알고 싶다는 어느 작가의 글에 동감을 했다. “이건 이름이 뭐야?”라고 묻는 어린 자식에게 ‘이것도 나무, 저것도 나무, 이건 큰 나무, 저건 작은 나무, 저건 보라빛 꽃, 저건 빨간 꽃......’이라고 말하는 염치없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변(辯)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질 만큼 커버린 딸아이가 내게 그러한 것들에 대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내와 나도 하늘을 나는 작은 곤충이나 새, 맑은 시냇물 속의 물고기, 길섶의 풀과 나무, 야생화나 들꽃으로만 알고 있는 무수한 꽃들의 진짜 이름을 알고 싶어졌다. 특히 꽃과 나무는 도감(圖鑑)을 가지고 다니며 비교해보.. 2013.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