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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지난 국토여행기 31 - 초가을에 만난 두 가지 꽃

by 장돌뱅이. 2013. 2. 21.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아이를 위해 나무와 꽃과 풀의 이름을 많이 알고 싶다는 어느 작가의
글에 동감을 했다. “이건 이름이 뭐야?”라고 묻는 어린 자식에게
‘이것도 나무, 저것도 나무, 이건 큰 나무, 저건 작은 나무, 저건 보라빛 꽃,
저건 빨간 꽃......’이라고 말하는 염치없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변(辯)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질 만큼 커버린 딸아이가 내게
그러한 것들에 대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내와 나도 하늘을 나는 작은 곤충이나 새,
맑은 시냇물 속의 물고기, 길섶의 풀과 나무, 야생화나 들꽃으로만
알고 있는 무수한 꽃들의 진짜 이름을 알고 싶어졌다.
특히 꽃과 나무는 도감(圖鑑)을 가지고 다니며 비교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다 한번 펴보는 책만으론 그들의 이름이 쉽게 기억되지 않았다.
욕심을 버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두 가지씩의 꽃이라도 직접 만나보고
그 이름만큼은 알아두자는 생각을 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올 봄부터 몇 번에 걸쳐 꽃을 찾아가는 국토 여행을 해 본 것도 그 때문이다.
꽃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는, 다만 같은 시기에 같은 땅 위를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아내와 내가 바치는 최소한도의 관심이자 예의일 뿐이지만, 사랑도 결국 자잘한
관심의 지류들이 모여 이루어가는 큰 강물 같은 것이라고 믿어 위로를 삼는다.
그런 꽃여행의 연장선에서 초가을 메밀꽃과 꽃무릇을 찾아보았다.


메밀묵과 메밀꽃
메밀은 묵과 꽃의 두 가지로 연상된다. 내 기억 속에는 메밀묵이 먼저이다. 
어릴 적 늦가을이면 어머니는 여러 개의 커다란 ‘다라이’에 가득가득 메밀묵을 만들어 온 동네 집집마다 한 그릇씩 돌리곤 했다. 
나도 가끔 메밀묵 배달 심부름에 나섰
지만 묵은 당시의 내게 친근한 음식이 아니었다. 

무덤덤하면서도 약간 쌉싸름한 맛에다가 미끌미끌하고 물컹쿨컹한 감촉이 당최 내 입맛과 맞질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밥상에 찬으로 오를 때는 물론이고 늦은 가을밤에 속이 출출할 때 어머니가 양념장을 둘러
손수 내오시던 
메밀묵에 손사래를 치거나 아예 손도 대지 
않고 고스란히 되돌리곤 했다. 

요즈음은 건강식이니 웰빙 음식이니 하며 그런 종류의 천연 음식들이 주목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여행길에 가끔 아내와 나도 돈을 주고 메밀묵을 사 먹는다.

세상의 어떤 음식보다 정갈하고 사랑이 듬뿍 담겼을 어머니의 메밀묵에는 고개를 돌리다가 
그것이 귀해지고 나서야 그 가치와 맛을 찾는 우둔함. 

나의 웰빙이란 게 그렇게 허약하고 얄팍할 때가 종종 있다.



메밀꽃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과 함께 떠오른다.
그리고 거기에 적합한 여행지는 당연히 소설의 무대였던 강원도 평창의 봉평이다.
봉평에서는 해마다 9월이면 메밀꽃 피는 시기에 맞추어 효석문화제가 열린다.
그러나 올해로 8회째를 맞는 효석문화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실망스럽게
변해가고 있는 듯 하다.

메밀밭에 산책로를 만들어 입장료를 받는 영악스러움이 상징하듯 이효석이 이룬
맑고 아름다운 초가을의 서정을 나누는 잔치마당이 아니라 개울가에 늘어선
먹거리 장터의 경박한 노랫소리만 해마다 요란해져 간다는 느낌이 든다.


*위 사진 : 플라스틱 모조 기와와 철책을 친 마당으로 좀 삭막해지 이효석 생가 
   
  
저희의 그런 낭만적 기대는, 무책임한 행사 진행 그리고
   주변 민속 장터의 어지러운 인공조명과 소음으로 무너져버렸습니다.
   일몰 후 단 1시간 만이라도 공원내의 음악 및 소음 그리고 메밀밭 주변의
   인공조명을 통제하고, 경치를 조용히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을 틀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취객의 고성방가와 뽕짝 메들리에  
   파묻혀 문학의 향기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메밀밭이 불쌍하더군요.
                                                     - 힌 인터넷 동호회 회원의
 글중에서 -



단 하나 남은 이효석 관련한 유적인 생가의 보존 모습도 눈에 거슬린다.
사극 세트장처럼 플라스틱 기와 모형으로 덮은 지붕하며 마당을 가로 지른
출입금지의 쇠사슬과 생가 바로 옆에 신장개업을 한 대형음식점 등은 다시는
효석문화제를 찾지 않을 것이란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다.
제대로 된 메밀꽃의 정취는 북새통의 행사장에서 빠져나와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봉평에 들어서기 전이나 생가 건너편의 입장료를 받지 않는 메밀밭에는
소금을 뿌린 듯 하얀 메밀꽃이 가득 피어있어 흐뭇하다.



강원도 봉평의 축제에 마음이 상해 좀 다른 분위기에서 메밀꽃밭을 걸어보고

싶다면 전북 고창의 학원농장으로 가야한다. 14만여 평의 학원농장은 봄에는
청보리로 가을에는 하얀 메밀꽃으로 뒤덮인다. 마치 흰 눈이 내린 것 같은 메밀꽃
사이를 천천히 걷다보면 어질어질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한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흐르는 구릉의 능선길은 푸른 가을 하늘과 맞닿아 있어
메밀꽃을 더욱 하얗게 빛나게 한다. 드넓은 메밀밭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거나
꽃 속에 파묻혀 카메라를 향해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해맑다.
아름다운 풍경이 사람들을 선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학원농장의 메밀꽃밭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봉평에 비해 한 가지 기우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효석이라는 소설가가 봉평과 메밀꽃에 심어 놓은 문화적
향기이다. 소설 속 허생원은 고창의 구릉을 넘어 간 것이 아니라 봉평에서 대화로
이어지는 팔십리 밤길을 걸어간 것이고, 그가 걸어간 산허리에는 흐뭇한 달빛
아래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밭이 누워 있던 것이었다. 그것은 봉평만이 누릴 수
있는 자산이다. 고창의 메밀밭이 그런 자산을 갖지 못한 것은 아쉬우나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남다른 자산을 활용하기는커녕 오히려 망치고 있는 듯한 봉평의
축제의 모습은 아쉽고도 비난 받을 일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붉게 타는 꽃무릇

메밀꽃과 비슷한 시기에 고창 선운사와 영광 - 함평 사이에 솟은 불갑산 자락의
불갑사와 용천사 주변은 핏빛처럼 선연한 붉은 빛의 꽃무릇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 세 곳은 우리나라의 3대 꽃무릇 군락지이다.
9월 하순 경에 절정을 이루는 꽃무릇은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이 지고
난 후 잎이 돋아나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출가한 스님을 사모하던
여인이 죽어 꽃이 되었다는 전설과 어울린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꽃무릇을 상사화(相思花)라고 하지만 진짜 상사화는
따로 있고 피는 시기도 다르다. 꽃무릇은 뿌리에서 꽃대가 30-40cm 솟아나
그 끝에 꽃을 피운다. 꽃대가 ‘마늘쫑’과 비슷하여 꽃무릇의 다른 이름이
석산(石蒜:돌마늘)이다.

꽃무릇이 대부분 절 주변에 무리지어 피어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꽃무릇의 뿌리에 방부제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탱화를 그리는데 요긴한
재료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 즙을 물감에 섞어 탱화를 칠하면
색이 잘 바래지 않고 좀이 스는 것을 방지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옛 사람들의 지혜에 대한 설명은 될 수 있을지언정 꽃무릇이 절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차라리 전설이 딱 들어맞는다.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불타는 여인의 넋.



선운사의 꽃무릇은 선운사 입구의 개울 주변으로부터 시작하여 경내 곳곳에
붉은 띠와 꽃밭을 만든다. 봄의 동백꽃과 가을의 꽃무릇이 모두 섬뜩할 정도로
강렬한 붉은 빛이다.

부도밭 옆에서 꽃무릇을 찍다가 썩은 나무 위에 피어난 꽃무릇을 보았다.
그 위태로운 곳에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감동스러워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그리고 아내에게 손짓으로 그것을 알려주었더니 아내의 말이 어떤 사람이
꽃을 꺾어다 그곳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억지로
세워 놓은 것이 분명했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 같은 방법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마 사진동호회에서 단체 촬영을 나온 듯 했다.



멀쩡한 꽃을 꺾어다 엉뚱한 곳에 세워놓고 찍는 사진을 그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들은 아름다움을 색다르고 기묘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손에 들고 있는 고성능의 카메라를 빼앗아 버리고 싶었다.
카메라조작을 배우기 전에 그들은 자연에 대한 사랑과 존중부터 배웠어야 했다.





영광 불갑사의 꽃무릇은 주차장 주변에서부터 일주문, 부도밭,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무려 3만여 평에 퍼져있다.



불갑사에서 멀지 않은 용천사 주변의 꽃무릇군락지는 무려 46만 평에 이르러
세계 최대규모라고 한다. 22번 국도를 벗어나 절로 향하는 도로 양쪽 옆에도
꽃무릇이 가득하여 꽃무릇만 따라가면 용천사에 닿을 수 있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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