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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지난 국토여행기 33 - 가을 곰배령

by 장돌뱅이. 2013. 2. 25.

   오게
   저속(低俗)에 항거(抗拒)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앞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안행(雁行) -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가을 안행(雁行)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 서정주의 시, ‘가을에’ 중에서


추분이 지난지 2주 정도인데 벌써 해뜨는 시각이 많이 늦어졌다.
아침 여섯시인데도 아직 어둑어둑하다. 잠자리를 빠져나가기가 싫어 뒹굴다가
아내의 채근을 듣고서야 꾸무럭거리며 일어섰다. 내게 있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처음 5분만 제외하면 나머지 하루는 늘 행복하다.

곰배령을 가기로 한 날이다. 주말의 단풍인파를 피하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야 했다.
국에 밥을 말아 마시듯 먹고 길을 나섰다. 아직 차들이 뜸한 이른 아침의 도로를 달리다
창문을 여니 밀려들어오는 공기가 서늘하면서도 상쾌하다. 가을이 깊어진 것이다.

서울을 벗어나자 길 좌우로 노랗게 물들어가는 논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아침 햇살을 머금은 결실의 들판은 풍요롭기 그지없다. 특히 벼가 막 익어가기 시작하는
때의 논은 화사하고 경쾌한 노란빛을 띄어서 파란 가을 하늘과 기가 막힌 어울림을
만들어낸다.
쌀과 논에 대한 다양한 경제적 혹은 사회적 입장이 가을논에서 느껴지는 풍요로움의
감정을 위협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쌀개방이라는 높다란 파고 앞에 우리는
고민하며 어쩔 수 없이 주판을 튕겨야겠지만 그 고민의 범주 안에 수치화 할 수 없는
정서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십여 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생활을 할 때 아내와 내가 그리워했던 것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의 가을논이었다. 그곳에서도 벼는 노랗게 익어갔고 그 풍경 역시 풍요로웠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우리나라에서와는 무언가 달랐다. 일년에 세 번의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그 곳은 추수기가 별도로 있어 보이지 않았다. 추수를 하는 논과 바로
인접한 다른 논에서는 모내기가 행해지는 식이었다. 그런 곳에서 익은 벼와 사계절이
순환하면서 만들어내는 우리나라 논의 색감은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원도 홍천과 현리를 지나 진동리의 한 음식점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아점’을 먹었다.
“아침가리를 가실려구요?”
식당주인이 물었다. 곰배령을 간다고 하자
“곰배령이요? 곰배령은 가을이 끝났을텐데......”
“가을이 끝나다니요?”
“야생화들이 다 시들었을 거라구요.”
“벌써요? 여기는 아직 단풍도 들지 않았는데......”
설악산의 단풍 소식이 뉴스를 탄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진동리까지 오는 동안 도로 주변의
산에는 논과는 달리 아직 초록이 강세였다. 그런데 곰배령에는 가을 끝났다니......
봄과 여름이 땅에서 위로 오르는 계절이라면 가을과 겨울은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계절이기 때문인가 보다.
다소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목적지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지난 5월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진동리의 한 산장에 머물면서 그곳을 기점으로 아침가리
계곡을 거슬러 오른 적이 있다. 가리란 지명은 산속에 화전을 일구어 밭을 만든 곳을
의미한다고 하며 아침가리란 아침에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해가 짧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겐 아침가리란 지명이 그렇게 좁고 옹색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고 아침처럼 싱싱하고 상쾌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느낌은
계곡트레킹을 하면서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가파른 경사의 산을 좌우로 거느리고 급하게 휘어진 아침가리계곡은 불편함이 가득한
곳이었다. 계곡을 따라 매달린 듯 나있는 옛길은 풀과 나무로 지워지며 희미해져있었다.
계곡의 안쪽 아침가리에 살던 사람이 떠나버려 사람의 발길이 닿은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드러난 팔과 다리는 길을 갈수록 나뭇가지와 바위에 긁혀 쓰라려 왔다. 길이 끊어지면
건너편 산자락으로 이어진 길을 찾느라 우리는 자주 계곡을 건너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아직 차거운 물에 몸을 적셔야 했지만 그것은 유쾌함을 동반한 불편함이었다.

계곡엔 인공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나라 이름난 계곡이면 으레 볼 수 있는, 행락객들이 버리고 간, 녹슨 부탄가스통이나
라면봉지, 소주병 등이 전혀 없었고, 핸드폰의 표시창엔 시간조차 표기되지 않았다.
그곳은 내가 이제껏 우리나라에서 만난 오지 중의 가장 오지이자-불편함이 있었기에
지켜질 수 있었던-원시였다. 서너 시간을 걸려 계곡을 빠져나왔을 때 나는 도시생활에서
내 몸 속에 찌들은 공해로운 어떤 것들이 모두 빠져나간 듯한 개운함을 느꼈다.

우리가 온 몸으로 자연을 받아들일 때 불편함은 더 이상 불편함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까지의 인간의 문명이란 것이 편리함만을 좇아 발전해왔다면 앞으로는 남아있는
‘불편함’을 보존하고 사라져버린 ‘불편함’을 되살리는 방향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연에 관한 한 누구나 보수적이어야 한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입장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질 수 있겠지만.

식사를 하고 아내와 나는 식당앞 개울로 나갔다. 진동리 위쪽에서 내려오는 방태천과
그 지류인 아침가리 계곡이 만나는 몽돌밭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간 커피를 마셨다.
햇빛은 몽돌밭에 눈부시도록 희게 내려쪼였고 그 곁으로 맑은 물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산행객들이 본격적으로 몰려오기 전에 자리를 떠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내와 나는
그 따사로움과 물소리가 좋아 커피를 여러 모금으로 천천히 나누어 마셨다.

방태천을 따라 도로는 쇠나드리, 설피밭을 지나 진동삼거리까지 이어진다.
거기서부터는 차를 세우고 걸어야 한다. 직진을 하면 단목령을 넘어 오색으로 가파르게
떨어지고 오른쪽으로 틀면 북암령을 넘어 양양으로 이어진다. 왼쪽으로는 강선리를
거쳐 우리가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삼고 있는 곰배령으로 오르는 길이다. 곰배령을
넘으면 곰배골, 귀둔리에 닿을 수 있다.

강선리로 가는 길목에는 우리보다 앞서간 이들이 타고온 벌써 몇 대의 차들이 도로변에
주차되어 있었다. 진동삼거리에서 강선리에 이르는 길은 산행이 아니라 평지를 걷는
듯한 편한 길이다. 그렇지만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다른 곳보다 일찍 물들기
시작한 현란한 색깔의 단풍 때문이었다. 아내와 나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카메라의
셔텨를 눌러야 했다.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였다면 필름 몇 롤(ROLL)쯤은
쉽게 없어졌을 것이다. 발걸음이 더딘 대신 입은 수다스러워졌다.
아내와 나는 연신 “와!”, “우와” 하는 짧은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래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
네"
              - 김영랑의 시, “오-매 단풍
들것네” -




아내는 이제까지 가장 좋았던 단풍길로 경주의 보문단지에서 무장사터로 이어지는
한적한 길을 꼽는다. 울산에 살 적에는 매년 가을이면 아내와 나만의 비밀스런 장소인 양
한번씩은 다녀오곤 했다. 사실 단풍으로만 친다면 유명한 내장사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만 그곳의 단풍을 보았을 뿐이다.

몇해 전 내장사 단풍을 보기 위해 갔다가 밀려든 차량과 인파에 길에만 갇혀 있다가
정작 내장사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차를 돌려 나온 뒤로는 아직 가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내와 내가 이름난 연예인의 팬사인회처럼 북적이는 이름난 곳을
가급적 피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내는 무장사터길에 더하여 강선리길을
자신만이 간직한 단풍숲길 목록에 올리겠다고 하였다. 내게도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한용운) 강선리까지의 가을길은 기억해두고 싶은 길이었다.

강선리를 지나면 길은 산등성이로 붙으면서 경사를 이룬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곰배령으로 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편안하다.
고개라는 것이 본시 그럴 것이다. 험난한 산줄기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가장 무난하고도 편안한 통로가 고개이니까.

일년 전 나는 강선히의 반대편인 귀둔리를 통해 곰배령에 오른 적이 있다.
그 때 어느 분의 표현을 빌어 곰배령을 하늘이 열리는 곳이라 했거니와 이번 산행에서도
그 느낌은 여전했다. 곰배령은 나무가 없는 초원지대이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곰배령을
오르건 숲이 끝나는가 하는 순간에 넓은 하늘이 열리는 시원스러움을 맛볼 수 있다.
아마 동해안 가까이 위치하며 백두대간 능선상에 있는 터라 바람이 드센 탓일 것이다.

진동리는 봄에는 흙바람, 여름에는 비바람, 가을에는 낙엽바람, 겨울에는 칼바람이
부는 곳이라고 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쇠나드리는 산능선이 아님에도 소도 날려버릴
정도의 바람이 분다고 하지 않던가. 곰배령도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연약한 풀만이 그런 바람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교훈적이다.

진동리 식당 주인의 말대로 곰배령엔 가을이 끝나가고 있었다.
‘천상의 화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철따라 피고 지는 야생화들은 이미 올해의
‘행사’를 끝낸 듯 갈색으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시들어가는 모습 자체가 또 하나의
‘행사’이리라. 자연에는 삶의 변화된 모습은 있을지언정 끝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므로.

곰배령에서 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생태보호를 위해 여기저기를 흰줄로 막아놓아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도 한정되어 있다. 아내와 내가 곰배령에 올라 한 일은, 지난번
내가 혼자 곰배령에서 그랬듯, 좁다란 길을 천천히 반복해서 걷거나 배낭을 등뒤에
받치고 느긋하게 누워있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곰배령은 무료하지 않았다.

능선에서 본 푸른 하늘은 더욱 높아보였다.
멀리 점봉산 너머로 보이는 설악산에 뭉게구름이 걸쳐있었다.
하늘은 구름 때문에 더욱 푸르게 보이고 구름은 하늘 때문에 더욱 하얗게 보였다.
물기를 버리고 가벼워진 풀들은 맑은 바람에 몸을 맞긴 채 흔들리고 있었다.
단순하고 소박한 풍경도 곰배령에선 감동적이다.
야생화는 사라졌어도 곰배령은 아직 ‘천상’인 것이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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