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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3

'용비어천가' 현대사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에서 권력을 칭송하는, 몸을 오글거리게 하는 내용의 '용비어천가'가 낯설지 않게 있어 왔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이승만대통령을 찬양하는 노래를 작사했다. 이 노래는 이승만이 권좌에서 쫓겨난 뒤에도 한참 동안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부를 정도로 알려졌다.우리나라 대한나라 독립을 위하여, 여든 평생 한결 같이 몸 바쳐 오신,고마우신 리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나오리다.오늘은 리 대통령 탄생하신 날, 꽃피고 새 노래하는 좋은 시절,우리들의 리 대통령 만수무강을, 온 겨레가 다 같이 비옵나이다.- 「우리 대통령 노래 」-그는 (박정희) '대통령 찬가'에도 가사를 지었다. 맑고 순수한 서정을 상징하는 청록파 시인의 재능이 부정한 권력 찬양에 쓰였다는 사실은.. 2025. 1. 23.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시월에 들면서 기온이 확연히 달라졌다.이래도 될까 싶게 갑자기 쌀쌀해진 아침저녁에 서둘러 긴팔 옷을 꺼내 입게 되었다.머지않아 투명한 햇살은 초록의 잎새에 스며들어 마른 향기를 피워 올리기 시작할 것이다.하늘과 땅 사이가 유난히 휑하게 넓어져 보이는 날에는 잊고 지냈던 무엇인가가 혹은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더러는 쓸쓸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리움과 쓸쓸함이야말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선함과 아름다움을 잠시라도 자각하는, '눈이 부시게 푸르른'  순간 아닐까? '악한' 그리움이라거나 '나쁜' 쓸쓸함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형용 모순일 것이므로. 눈이 부시게 푸르는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봄이 또오면 어이하리야내가.. 2024. 10. 3.
쉬어 가자 벗이여 여섯이 모였다. 출신 지역도 대학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다. 공학에 체육에, 미술에·······. 사는 방식과 취미는 물론 세상과 정치를 보는 시각도 다르다. 공통점은 오직 한 가지 -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애초부터 무슨 생각이나 목표가 같아서 친구가 된 것은 아니다. 우연히 학기 초에 옆자리나 뒷자리에 앉게 되었거나 그렇게 친하게 된 친구의 친구였거나 아니면 방과 후 축구를 하거나 교문 앞 라면집에서 만나 가까워졌을 뿐이다. 개중에는 같은 방식의 우연으로 중학교 때부터 친구가 된 사이도 있다. 학교에서 보는 것만으로 부족해 서로의 집을 오고가며 침식을 자주 했다. 그러다보니 서로의 가족들에 대한 기억도 주민등록등본처럼 세세하다. 그 우연이 50년 가까운 세월의 두께로 쌓이니 이제.. 2019.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