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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by 장돌뱅이. 2024. 10. 3.

시월에 들면서 기온이 확연히 달라졌다.
이래도 될까 싶게 갑자기 쌀쌀해진 아침저녁에 서둘러 긴팔 옷을 꺼내 입게 되었다.
머지않아 투명한 햇살은 초록의 잎새에 스며들어 마른 향기를 피워 올리기 시작할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가 유난히 휑하게 넓어져 보이는 날에는 잊고 지냈던 무엇인가가 혹은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더러는 쓸쓸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리움과 쓸쓸함이야말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선함과 아름다움을 잠시라도 자각하는, '
눈이 부시게 푸르른'  순간 아닐까?
'악한' 그리움이라거나 '나쁜' 쓸쓸함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형용 모순일 것이므로. 

눈이 부시게 푸르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서정주, 「
푸르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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