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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3

항동철길 주변 항동철길을 가기 위해선 지하철 7호선 온수역이나 천왕역에서 내리면 된다.아내와 나는 온수역 - 성공회대학교 - 푸른수목원 - 항동철길 - 천왕역의 순서로 걸었다.성공회대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구드윈관이 있다.신학교육을 위해 헌신한 구드윈(Charles Goodwin) 신부를 기리기 위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1936년에 건축된 구드윈관은 신학원장의 숙소였으나 1970년 이후 유신 독재 치하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젊은이들의 연구집회장소로서 민주화운동의 산실이 되었다.교정을 지나 야트막한 뒷동산에 오르니 신영복추모공원이 나왔다.신영복 교수는 경제학자, 철학자이며 서예가이다.그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나와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 1968년 통일혁명단 .. 2024. 11. 20.
따사로운 햇볕 한 줄기 *스페인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거지 소년」(1650경, 루브르 박물관) 코로나 바이러스에 온갖 추측과 가짜 뉴스의 인포데믹스(Infodemics)가 더해지고, 거기에 다분히 총선을 염두에 둔 저급한 정치적인 술수까지 횡행하면서 텔레비젼이나 인터넷의 뉴스가 점점 더 보기 싫어진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행동에 나서지는 못할 바에야 자신의 일상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이 소동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일까? 누더기 옷차림의 어린 거지가 창가에 앉아 있다. 어디서 얻었을까? 걸망에 과일이 몇 개 들어있다. 왼쪽 다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 과일 껍데기라면 이미 한두 개를 먹었나 보다. 허기도 채웠겠다 창문 크기만하게 비쳐드는 햇볕 아래서 옷깃을 뒤져 이를 잡고 있다. 고달프고 서러운 삶도 잠시 .. 2020. 3. 17.
내가 읽은 쉬운 시 38 - 신영복님의 삶과 글 작년 여름 광화문의 서점에서 신영복님의 서화전이 있었다. "함께 맞는 비"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서점에서 가까운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을 다녀온 직후였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슬픔과 분노가 스러지고 대신 자리 잡기 시작한 체념과 무기력. "함께 맞는 비"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이 글을 아전인수의 변명으로 내세우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기도 하면서. 내게는 어려운 말이지만 신영복님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로 ‘석과불식’(碩果不食)을 꼽았다. 그의 (감옥) 20년을 견디게 한 화두였다고. 석과는 '씨과일'이란 뜻으로 "씨 과실은 먹지 않는 것"이 지혜이며 동시에 교훈이라고 했다. "씨과실은 새 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 2016.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