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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따사로운 햇볕 한 줄기

by 장돌뱅이. 2020. 3. 17.


*스페인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거지 소년(1650경, 루브르 박물관)


코로나 바이러스에 온갖 추측과 가짜 뉴스의 인포데믹스(Infodemics)가 더해지고, 거기에 다분히
총선을
염두에 둔 저급한 정치적인 술수까지 횡행하면서 텔레비젼이나 인터넷의 뉴스가 점점 더 보기
싫어진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행동에 나서지는 못할 바에야 자신의 일상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이 소동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일까?


누더기 옷차림의 어린 거지가 창가에 앉아 있다
.
어디서 얻었을까? 걸망에 과일이 몇 개 들어있다.
왼쪽 다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 과일 껍데기라면 이미 한두 개를 먹었나 보다.
허기도 채웠겠다 창문 크기만하게 비쳐드는 햇볕 아래서 옷깃을 뒤져 이를 잡고 있다.
고달프고 서러운 삶도 잠시 햇볕에 밀려나간 듯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몇 개의 과일, 따사로운 햇볕, 밀린 일을 하는 작은 성취감....
위로는 때때로 아주 작고 시시한 것에서 온다. 
그러나 조용히 삶의 내면을 응시할 줄 아는 사람에게 그것은 우주의 크기가 된다.


20년 무기징역을 살아오는 동안 수시로 고민했습니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고 기약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가?
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습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비스듬히 벽을 타고 내려와
마룻바닥에서 최대의 크기가 되었다가 맞은편 벽을 타고 창밖으로 나갑니다.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습니다.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습니다.
( ...... ) 나는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받지 못했을 선물입니다.


-신영복의 『담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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