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한창이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 하니 꽃은 저절로 거리를 두게 된다.
먹을거리를 사러 다녀오는 길에 아내와 아파트 주변을 잠시 걸었다.
손자를 보러 다니고 집에서 쉬는 것이 요즈음 내 생활의 전부다.
책과 (TV로) 영화를 보고 최근에 배운 동영상 편집을 익히다 보면 하루가 크게 답답하지는 않다.
하지만 자발적 '은둔'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거리두기'다보니 계절의 화사함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시인의 기다림과는 좀 다른 의미이지만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아니 꽃그늘 아래 제대로 들지 못하고 올봄의 내 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올봄 꽃구경은 이게 끝"
장바구니를 들고 오며 아내에게 말했다.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는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 보겠지.
가디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버릴 생(生),
내가 늘 기다렸던 이 자리에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 나희덕의 시, 「오분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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