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지났다.
설날에 먹은 한 살이 만으로 확정되었을 뿐이다. 특별한 감회가 있을 리 없다.
이제 나이야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 "우리가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하며
지난 시절을 돌아볼 때나 실감하게 되는 삶의 부산물 같은 것이다.
규칙적으로 먹어야 하는 약이 생기면서부터 나이 먹는 의미는 더 시큰둥해졌다.
그래도 나이를 안 먹으면 죽는 거라는 시인의 말에 '그렇지!'하는 깨달음이 온다.
살아있어 한 살을 더 먹는다.
감사하자!
아침저녁 한 웅큼씩
약을 먹는다 약 먹는 걸
더러 잊는다고 했더니
의사선생은 벌컥 화를 내면서
그게 목숨 걸린 일이란다
꼬박꼬박 챙기며 깜박 잊으며
약에 걸린 목숨이 하릴없이 늙는다
약 먹는 일 말고도
꾸역꾸역 마지못해 하고 사는 게
깜박 잊고 사는 게 어디 한두 가지랴
쭈글거리는 내 몰골이 안돼 보였던지
제자 하나가 날더러 제발
나이 좀 먹지 말라는데
그거 안 먹으면 깜박 죽는다는 걸
녀석도 깜박 잊었나보다
- 정양의 시, 「그거 안 먹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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