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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냉국3

아내와 나의 여름 음식 소설가 김훈은 몇 차례의 결혼식 주례 경험을 글로 쓴 적이 있다. 그는 신랑 신부에게 매번 주제를 바꿔가며 주례사를 했다. 일테면 결혼의 추동력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밥 먹여주지는 않으므로 밥을 벌어먹는 물적 토대를 갖추어라. 삶이 요구하는 형식 - 내 배우자의 부모의 생일, 기념일, 안부를 챙기고 명절 때 인사하는 진부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존중하라. 결혼은 오래 같이 살아 생애를 이루는 것이므로 사랑보다도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연민을 가져라 등등. 그중에 남편과 아내가 요리를 배워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례사도 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적어도 주말에는 장을 봐서 스스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다. "그것은 영양가 있고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섭생적 의미도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 2023. 7. 29.
더위를 피하는 세 가지 방법 덥다. 엇그제 산책길에 올 첫 매미 소리를 들었다. 본격적인 여름이다. 연일 찜통 더위가 계속된다. 이열치열이라지만 그건 내공이 쌓인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고 나는 '이냉치열'이다. 냉국. 여름 한낮 밥상에 가장 적절한 음식이다. 얼음 띄운 냉국을 수저로 뜨며 잠시 더위를 식혀 보았다. 1,오이미역냉국 오이 냉국은 냉국의 대명사다. 올해는 새롭게 해보겠다고 인터넷을 뒤져 미역을 넣어봤는데 아내의 반응은 별로였다. 그냥 오이냉국이 낫다는 것이다. 판정에 다소 불만이 있어도 주심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선수의 도리이다. 그에 앞서 엄정하고 솔직한 평가는 내가 아내에게 요구한 것이다. 칭친 남발은 고래를 춤추게는 할 수 있지만 나의 실력과 아내 전속 쉐프(?)로서 아내의 취향 파악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22. 7. 10.
내가 읽은 쉬운 시 132 - 안도현의「물외냉국」 어릴 적 오이를 잘라 가운데 부드러운 부분을 손가락으로 파내고 잔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물을 담아 어른들이 술을 마실 때 내는 "카아!" 소리를 흉내내며 친구와 여러번 대작을(?) 하다가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았다. 애초 술을 상상하기보다 물에서 나는 향긋한 오이 냄새가 좋아서 한 짓이었다. 그 무렵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오이냉국. 펌프 물인데도 그릇에 이슬이 맺힐 정도로 시원했다. 막걸리 식초를 넣어 새콤해진 맛도 잠시 더운 여름을 쫓는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오이가 아삭하게 씹힐 때마다 입과 코에 퍼지는 은은한 향기가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딸아이는 바로 그 향기 때문에 오이를 싫어한다. 좋아하는 이유와 싫어하는 이유가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정확히 들어맞는다. 아쉽지만 그래서 오이냉국은 딸아이와.. 2019.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