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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장2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이미 쓰레기 장에 던져버린 역사의 오물을 다시 뒤적거리는 이들이 있다. 마치 자신들의 뿌리라도 찾는 양 자못 진지하다. 터무니없이 진지해서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우리들에겐 결국 비극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의 현재의 모습을 합리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홍범도를 치우는 자리에 들어서는 이승만. 해방된 조국에 친일파를 득세시켜 집권하고, 전쟁 중 피난처에서도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비열한 정치 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양민 학살에 국민방위군으로 뽑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숨지게 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온갖 부정선거를 획책하다 끝내 깡패들과 총탄의 야만에도 굴하지 않는 민중들의 저항에 쫓겨간 늙은 망령. 오래전 대학로 근처 이승만의 숙소 이화장을 지나며 썼던 글을 .. 2024. 2. 14.
지난 국토 여행기17 - 낙산에서 대학로까지 서울 도성의 역사 태조는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직후 수도 방위와 인원 통제, 도적 방지 등을 목적으로 도성을 축조하게 된다.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여 한양의 산세를 살피고 왕 스스로 축성 예정지를 여러 차례 답사한 끝에 백악산, 낙산, 목멱산(남산), 인왕산의 내사산(內四山)을 잇는 타원형의 성곽 공사에 착수하여, 1년 만인 1396년에 총연장 59,500척(19km)의 축성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고려시대의 천리장성에 비하면 그 크기가 작으나 수도를 방위하는 도성으로서는 세계에서 또 다른 유례가 없이 큰 성이라고 한다. 축성공사는 1, 2차로 나누어져 실시하였으며 공사에 동원된 총인원은 20만 명에 달했다. 당시 한양의 인구가 겨우 5만이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책사.. 2013.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