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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2

나의 수타사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 갈까 패랭이꽃 보러 갈까 구죽죽 비는 오시는 날 수타사 요사채 아랫목으로 젖은 발이나 말리러 갈까 들창 너머 먼 산이나 종일 보러 갈까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비 오시는 날 늘어진 물푸레 곁에서 함박꽃이나 한참 보다가 늙은 부처님께 절도 두어 자리 해바치고 심심하면 그래도 심심하면 없는 작은 며느리라도 불러 민화투나 칠까 수타사 공양주한테, 네기럴 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갈까 긴 긴 장마 -김사인, 「장마」- 수타사는 강원도 홍천에 있다. 공작산 아래 수타계곡의 깊은 곳에 위치한 조용한 절이다. 아내가 결혼 전 근무하던 학교가 그곳에서 멀지 않다. 그래서인지 난 수타사 하면 그 시절의 아내를 떠올린다. 어제 저녁엔 지난 앨범에서 교정 화단에 선 앳된 모습의 아내를 보.. 2020. 7. 14.
장마의 기억 장마철마다 서울은 수도(首都) 아닌 '수도(水都)'가 되곤 했다. 매년 한두 번씩 중랑천 물이 넘쳤다. 아버지와 청량리를 다녀올 때면 버스 창문 너머로 거센 흙탕물이 다리 교각을 휘감으며 위압적으로 갈기를 세우곤 했다. 천변 방죽을 따라 다닥다닥 들어선 검은색 루핑의 집들이 여차하면 물길에 휘말릴 듯 위태롭게 보였다. 가재도구들이 숨바꼭질하듯 물속에 잠겼다 드러났다를 반복하며 빠른 속도로 떠내려 갈 때도 있었다. 그럴 즈음이면 동네 친구들 사이에선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들이 떠돌곤 했다. 돼지 따위의 가축들이 산 채로 허우적거리며 휩쓸려 갔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튼튼하게 꼰 새끼줄로 고리를 만들어 영화 속 카우보이처럼 그 돼지를 건져냈다고도 했다. 무슨 청승이었을까? 한번은 동네 개구쟁이들이 그 물난리.. 2013.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