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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하루 비가 오는 날은 같은 음악과 커피를 듣거나 마셔도 맑은 날과는 느낌과 맛이 다르다. 혹은 보통 때와는 다른 분위기의 음악과 다른 맛의 커피를 찾기도 한다. 아내는 날이 우중충하면 평소에는 즐겨하지 않는 '달달이(케이크이나 쿠키)'를 궁금해 한다. 비 오는 날 특유의 눅진한 감촉과 낮은 채도와 명도의 풍경이 만드는 분위기에 사람의 감정도 젖어들기 때문일까? 집안에 머물기 힘들게 만드는 화창한 날씨만큼 부산해지는 마음을 다독이듯 가끔씩 내리는 비가 싫지 않은 이유다. 근래에 들어 가끔씩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잔다. 젊은 날에는 없던 일이다. 딸아이 결혼 전까진 맑으면 맑은 날씨를, 비가 오면 비를, 심지어 태풍이 오면 태풍을 이유로 아내와 딸에게 나들이를 종용하곤 했었다. 기력이 떨어져서 그런 거 아니냐며 .. 2021. 4. 13.
한가위 보내기 축제 분위기가 가장 길었던 한가위 연휴. 아내와 자주 한강 변을 걸었다. 강변에도 가을이 왔다. 잔물결 위에 사금파리처럼 부서지는 성긴 햇살이며 코스모스를 가볍게 흔드는 바람. 헐렁해진 허공. 해 질 녘의 서늘한 기운. 걸음도 살랑 가벼웠다. 손자 친구가 큰절의 '개인기'를 선보였다. 아마 제 부모의 의도적인 반복 훈련이 있었으리라. 아무렇거나 친구의 오체투지에 가까운 큰절을 받으니 한가위 저녁이 더욱 풍성해졌다. 친구와 집 주위 산책도 흥미진진한 놀이였다. 이제 장난을 먼저 시작할 줄도 아는 친구의 성장이 흐믓했다. 썰물처럼 손님들이 빠져나간 명절의 뒤끝, 아내와 둘이서 각종 전(煎)을 한꺼번에 넣고 새우젓과 무를 넣어 졸인 반찬과 함께 식사를 했다. 동그랑땡과 동태전, 버섯전과 호박전 등등. 아내가 .. 2017. 10. 10.
전 부치기 어릴 적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어귀에서부터 느껴지는 고소한 냄새는 이제 설이나 한가위가 바로 코앞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였다. 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들은 번철에서 갖가지 전을 노랗게 부쳐냈다. 만들어진 전은 동그란 채반에 집단체조를 하듯 맵씨있게 놓였다. 전 부치는 일이 끝나면 대청마루의 곳곳은 전이 담긴 채반이 여러 개 놓여있기 마련이었다. 다른 집에 비해 양이 유난히도 많았던 것은 명절 음식은 푸짐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방을 들며나며 심심풀이로 한두 개씩 전을 꺼내먹다가 어른들로부터 차례상에 오를 음식이라는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시집간 딸아이가 집에 왔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팽이버섯으로 전을 만들었다. 기름과 함께 달궈진 팬에 부침가루를 묻힌 전이 놓일 때 나는 소리와 냄새 .. 2015.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