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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전 부치기

by 장돌뱅이. 2015. 8. 31.

어릴 적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어귀에서부터 느껴지는 고소한 냄새는
이제 설이나 한가위가 바로 코앞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였다.
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들은 번철에서 갖가지 전을 노랗게 부쳐냈다.
만들어진 전은 동그란 채반에 집단체조를 하듯
맵씨있게 놓였다.

전 부치는 일이 끝나면 대청마루의 곳곳은 전이 담긴 채반이 여러 개 놓여있기 마련이었다.
다른 집에 비해 양이 유난히도 많았던 것은 명절 음식은 푸짐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방을 들며나며 심심풀이로 한두 개씩 전을 꺼내먹다가 어른들로부터
차례상에 오를 음식이라는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시집간 딸아이가 집에 왔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팽이버섯으로 전을 만들었다.
기름과 함께 달궈진 팬에 부침가루를 묻힌 전이 놓일 때 나는 소리와 냄새 -
어릴 적 명절의 축제 기분이 다시 느껴졌다.

지난 유월 친구의 텃밭에서 감자를 캐왔다.
주변에 여기저기 나누어 주기도 하고 집에서 감자채, 감자조림, 감자국 등을 해먹었는데도
아직 많은 양의 감자가 남아 있다.

좀더 빠른 감자 소진을 위해 아내와 인터넷과 책을 뒤져 새로운 감자 요리법을 찾아 보았다.
그 중에 내가 만든 두가지 음식이 위 사진이다.
하나는 보이는 대로 감자채 전이고
다른 하나는 "스페인식 감자오믈렛"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아내는 늘 내가 만든 요리에 후한 평가를 내려준다.

위 사진에 보이는 옥수수전은 요즈음 뜬 백종원씨의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알게 된 것이다.
마침 집에 옥수수 통조림이 있다고 아내가 알려주어 시도를 해보았다.
누구던 할 수 있는 초간단 조리법이었다. 그게 백종원씨의 강점인 것 같았다.

옥수수 전을 만들다가 갑자기 나도 요리의 고수들처럼 후라이팬을
튕겨서 전을 한번에 뒤집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하지 않고 주걱으로 옥수수 전을 뒤집으려니 형태가 흐트러질 것 같기도 했다.

푸라이팬을 들고 주추주춤거리다가 과감하게 반동을 주었더니
옥수수가 흐트러지지 않고 뒤집혀졌다.
나는 푸라이팬을 들고 아내에게 달려오며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처럼 소리를 질렀다.
"우와! 됐어 됐어!"
재미 삼아 서너번을 더 뒤집으며 전을 부쳤다.

그런데 전을 먹고 난 잠시 후 부엌 쪽으로 가던 아내가 내게 물었다.
"당신 부엌 바닥에 기름 쏟았어? 바닥에 온통 기름 천지야."
아내는 예민한 추리 끝에 전을 뒤집을 때 기름이 튀었다고 결론을 지었다.
덕분에 부엌에서 금지행위 1호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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