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은 같은 음악과 커피를 듣거나 마셔도 맑은 날과는 느낌과 맛이 다르다.
혹은 보통 때와는 다른 분위기의 음악과 다른 맛의 커피를 찾기도 한다.
아내는 날이 우중충하면 평소에는 즐겨하지 않는 '달달이(케이크이나 쿠키)'를 궁금해 한다.
비 오는 날 특유의 눅진한 감촉과 낮은 채도와 명도의 풍경이 만드는 분위기에 사람의 감정도 젖어들기 때문일까? 집안에 머물기 힘들게 만드는 화창한 날씨만큼 부산해지는 마음을 다독이듯 가끔씩 내리는 비가 싫지 않은 이유다.
근래에 들어 가끔씩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잔다. 젊은 날에는 없던 일이다.
딸아이 결혼 전까진 맑으면 맑은 날씨를, 비가 오면 비를, 심지어 태풍이 오면 태풍을 이유로 아내와 딸에게 나들이를 종용하곤 했었다. 기력이 떨어져서 그런 거 아니냐며 아내는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60대 이후의 낮잠 10분은 밤잠 한 시간과 맞먹는다는 말도 있다.
하긴 졸리면 자는 것이지 (손자 친구와 어울리는 일이 아니라면 ) 졸음 참고 눈 부릅뜨고 해야 할 일이 있을 리 없는 백수지 않은가.
'주룩주룩 낙숫물 소리 / 낮잠을 방해할 것도 같은데 / 어째서 빗소리 들릴 땐 / 유독 잠이 달콤한 걸까?'
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의 글이다.
아파트에서는 낙숫물 소리는커녕 웬만한 장대비가 아니면 소리만으로 비가 내리는 걸 가늠하기 쉽지 않다. 무심코 밖을 내다보다가 '어? 비가 오네?!' 하고 뒤늦게 깨닫기 일쑤다. 이규보처럼 잠을 재촉하는(?) 낙숫물 소리도 없는데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다. 깨고나니 아내가 코까지 골며 곤히 자더라고 말해주었다. 50대 중반까진 친구들과 놀러가 '코파'와 '비코파'를 나누어 잠자리를 정할 때면 '비코파'에 속했는데 시나브로 시나브로 나도 '코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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