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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영화 『더 포스트(THE POST)』

by 장돌뱅이. 2021. 4. 23.

1971년 6월 뉴욕타임스는 미국 펜타곤의 비밀문서를 폭로한다.
문서는 베트남 전쟁에 정식으로 개입하기 이전부터 미국이 저지른 음모와 조작, 은폐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닉슨 행정부는 타임스의 기사가 국방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며 기소를 했고
법원은 추가 보도 금지 명령을 내린다. 우여곡절 끝에 한발 늦게 비밀문서를 입수한
워싱톤 포스트는 후속 보도를 이어갔고 정치권력과 첨예하게  대립을 하게 된다.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더 포스트』는 이런 상황 속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 전말을 다룬다.
열정이 넘치는 편집장인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와 보도가 몰고 올 파장을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의 모습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이성을 상실한 거대 국가권력의 음모와 압박에도 진실을 보도하려는 언론의 결연한 모습과
이를 지켜준 사법부의 판단은 미국뿐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에 고귀한 역사적 사례와 교훈을
선물해 주었다. 이 영화를 보며 우리의 언론들을, 현재가 아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즐겨
말하는, 그마저도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하는 일제 강점기와  독재 정권 시절의
그들의 행적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넣어보면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의 전체적 개괄을  쉽게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해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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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언론이 서로 신뢰하면서 같은 디너파티에 가고 칵테일을 마시고 농담을 주고받는데,
그 사이에 베트남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요."


"맙소사! 맥너마라(Robert McNamara국방장관)는 1965년에 우리가 못 이길 걸 알았네.
자그마치 6년 전이라고.
아니 7천 장 짜리 문서가 백악관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 30년 간
거짓말 한 걸 낱낱이 밝히고 있어.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에 존슨까지 거짓말했다고.
베트남을 갖고 거짓말한 거야.
의회에 거짓말 하고 국민에게도 거짓말했어. 이길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사지에 군인들을 보낸 거야."

"닉슨은?"
"다른 대통령이 하던 대로 계속해 나갔어. 대통령 재임 중에 전쟁에서 지는 게 무서웠던 거지."

"어느 시점엔가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지고 있다는 걸 아는데 왜 계속 여기 있느냐고.
10%는 남베트남을 돕기 위해서라고 했고,  20%는 공산당 놈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랬어.
70%는 미국이 패배한다는 치욕을 피하기 위해서랬지."

"그들이 거짓말한 방식, 그렇게 거짓말하는 그런 날들은 끝나야 해요.
우리가 저들의 권력을 점검해야 해요.
우리가 저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맙소사, 대체 누가 하겠어요."

"책임을 묻는 것도 다 괜찮지만 신문사를 뺏기면 책임을 물을 수가 없어요."
"내가 아는 리처드 닉슨은 대통령의 전권을 끌어모아서 신문사를 파멸시킬 방법을 반드시 찾아낼 거예요.


"정부가 이기고 유죄판결을 받으면 우리가 아는 '워싱턴 포스트'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겁니다."

"뭘 실어도 되고 안 되는지 정부가 말해주는 세상이 된다면 우리가 아는 '워싱턴 포스트'는
이미 존재하지 않아요."

"발행 안 하면 우리 모두 전부를 잃을 겁니다. (···)
두려운 거로 보일 겁니다!
우리가 지고, 나라 전체가 지고 닉슨이 이긴다고요!

닉슨이 이번에도 다음번에도 이기고 그다음에도 계속 이길 텐데 우리가 겁먹어서예요."
"출판 권리를 주장할 유일한 방법은 출판하는 것뿐이니까요."
"가요, 가는 거예요. 발행합시다."

"오늘 아침에 워싱턴 포스트에 발행된 자료가 미국 국방과 관련한 정보를 담고 있다더군요.
일급 기밀로 분류된 내용도 들어있고요. 따라서 이 정보의 출판은 미국 연방 법전 스파이
방지법 18장 793항의 직접 위반입니다. 출판으로 인해 미 국방의 이해에 있어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초래되므로 이런 성격의 정보를 더는 발행하지 말 것을 삼가 요청하는 바이며······"


"헌법 제정자들이 언론의 자유를 준 것은 반드시 가져야 할 보호 장치이며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역할을 다하기 위함이다. 언론은 피치자에게 봉사하는 것이지 통치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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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에 대학을 다녔다면 한 번쯤 읽어보았을 이영희 교수의『전환시대의 논리』
영화가 담아내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비밀문서가 담고 있는 - "국가이익을 해치고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미국정부가 공개되기를 반대한 그 비밀문서들을 숙독해보면 그것이 공개됨으로써 타격을
입을 것은 국가나 국민이 아니라 집권자의 정책에 참여한 인물들의 위신과 체면뿐인" - 내용
그 자체이며, 그것으로 인해 끔찍한 고통받은 사람들, 특히 무고한 베트남 국민들일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그 분쟁의 핵심인 '월남전쟁에 관한 미국 정부의
비밀문서' 그 자체는 읽지 않고 다만 극적인 정부 대 언론의 투쟁만을 따른 것 같다. 미국 언론의
승소가 아무리 빛나는 결과라고 하더라도 비밀문서로 밝혀진 그 30년간의 과정에 뿌려진 추악함과
독선과 비인간성은 회복할 길이 없다. 더욱이 거의 절대적인 힘을 갖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국가
권력이 광기를 띠게 되는 경위가 중요하다. 남은 하나도 속지 않았는데 거꾸로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는 권력이라는 최면술이 자기 사회와 남의 민족까지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메커니즘을 이 비밀문서는 소름 끼칠 만큼 감춤 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국가권력이 이성을
상실해가는 이 긴 과정을 뉴렌베르크의 전범 재판 기록 이상으로 상세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서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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