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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영화『러빙』

by 장돌뱅이. 2021. 4. 4.

영화『러빙』

백인인 리처드와 유색 인종인 밀드레드는 서로 사랑을 한다.
밀드레드는 임신을 했고 둘은 결혼을 서두른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에서 둘은 결혼을 할 수가 없다.
백인과 유색인종과의 결혼이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은 어쩔 수 없이 컬럼비아 특별구에 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돌아오지만
신혼의 단꿈이 가시기도 전에 체포된다.  
두 사람을 체포한 경찰관은 말한다.
"주님의 뜻이야. 참새와 울새가 다르게 태어난 건 다 이유가 있어."

두 사람은 기소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다.
버지니아주에서는
25년 동안
함께 살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버지니아에 사는 한 아이들도 법적으로 사생아가 된다.

판결문은 이렇게 말한다.
"전능하신 신은 온갖 피부색의 인종들을 창조하신 후  각각의 대륙에 살게 하셨다.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은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신은 인종끼리 서로 섞이는 걸 원치 않으셨다."  
1958년에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이후 두 사람은 법적 투쟁 끝에 십 년 만인 1967년 연방법원으로부터
버지니아주의 '인종간 결혼금지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낸다.
리처드와 밀드레드는 이 판결을 얻어내기까지 우여곡절의 험난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특히 백인이었던 리처드는 '이혼 하면 간단하지 않냐'는 주위의 비아냥에도 흔들림 없이
아내와 아이들을 지켜냈다. 그의 풀네임이 '리처드 러빙'인 것이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연방 법원 판결 이후 다른 15개의 주에서도 타인종간 결혼 금지법이 폐지된다.

코미디 같은 인간의 무지와 오만은 지금도 사라지기는커녕 다양화되고 심화되고 있다.
근거 없는 편견과 차별을 사람들은 자주 신의 이름으로 미화하고 도덕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한다.
최근에 서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아시아 인들에 대한 폭력만 봐도 그렇다.
그들은 좋고 싫음을 옳고 그름으로 바꾸고 확신한다.

자신과 외모와 말투가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출신 학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남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성적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이가 다르다는 이유로, 심지어 사는 동네와 아파트가 다르다는
이유로, 
 
구분하고 차별한다.

모든 다름이 차별의 이유가 되고 차별은 다시 다름의 근거가 된다.  
자칫 탕수육을 '찍먹'하거나 '부먹'한다는 취향만으로도 서로 눈을 부라리는 경우가 생길 것 같다.
이 모든 편견들이 언제쯤이면 버지니아의 연인들에게 내려졌던 판결처럼 우스운 일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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