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죽음을 배우는 ― 시간』이란 책을 읽었다.
현직 의사며 교수인 저자인 김현아 씨가 의료 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고민하게 된 '존엄사'에대한 연구를 담은 책이다.
책은 "병원 현장에서 환자나 그 가족은 끝없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의료 서비스에 집착하고
의료진들은 의료분쟁의 위험을 피하고자 방어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과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한 인간으로서 삶을 잘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명 의료에 매달리는 한국인의 임종 문화"에 대해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현실감 있는 설명을 담고 있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일어나는 최대의 사건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일생
일대의 사건에 대해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보다도 준비를 덜 한다.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 하는 법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병원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상태로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현대
의료는 죽음에 대한 정의마저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고령화 사회(총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 7%)를 지나 2026년이면 초고령 사회(20%)로
진입할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에 대한 올바른 준비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화두라
아니 할 수 없겠다.
일본 속담에 "남아 있는 벚꽃도 떨어지는 벚꽃도 다 지는 벚꽃"이라 했다지 않던가.
저자는 말한다.
누구에게도 "병원은 생의 마지막 장소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가까운 가족과의 접촉조차 금지되는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은 더욱 그렇다."
일본의 야마자키 후미오도『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같은 말을 했다.
"가족들은 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정제 대신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잔의 포도주를 따라
줄 것이다. 집에서 만든 수프라면 그 냄새에 식욕을 느낀 그가 몇 모금 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스프 한 모금은 어쩌면 그에게 어떤 영양제보 다도 훨씬 더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을 것이다."
온갖 기계의 소음에 파묻혀 몸의 여기저기에 구멍을 뚫고 들어온 삽입관에 시달리지 않는
인간적인 죽음을 위해 최소한의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될 수밖에 없겠다. 비록 우리나라에서 33만여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서도 그 뜻에 따라 생을 마감한 경우는 725명뿐이라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를 방문했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작성, 접수를 하는데 아내와 둘이서 10여 분 정도 걸렸다.
보건복지부가 만든 안내 팸플릿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여 국민이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에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수혈,
체외생명유지술(ECMO), 혈압상승제 투여 등의 의학적 시술고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쳥결 치료와 통증 완화 치료 포함 일반 의료 행위는 계속한다.
의료보험공단 사무실을 나와 아내가 딸아이에게 전화로 우리가 한 일을 알렸다.
딸아이는 이미 알고 있는 터라 덤덤히 받았다.
중요한 일 한 가지를 끝냈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우리도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내와 누구에게나 느닷없이 다가올 수 있는 죽음에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화사한 봄꽃의 공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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