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살펴보다 낯익은 제목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 THE LIFE AHEAD」.
얼마 뒤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그 책을 또 보게 되어 빌려왔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70년 대 후반 인기가 있던 소설이었다.
소설의 내용을 노랫말로 담은 노래 "모모"가 대학 가요제에서 입상할 정도였다. 맑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콩쿠르상 수상작이라는 후광이 더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이야기를 상큼하고 따뜻하게 풀어나갔다고 그 무렵 활동하던 동아리 회원들과 감상을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사랑은 남녀 간의 그것이 아니라 어린 소년과 노인, 프랑스와 아랍 혹은 아프리카, 백인과 흑인, 기독교와 회교의 간격을 메우는 좀 더 보편적인 사랑을 말한다.
책과 영화의 내용은 조금은 다르다. 우선 공간적 배경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다르다.
세부적인 줄거리도 일부 다르지만 그 차이가 크다고 볼 수 없고 어느 쪽이건 자연스럽다.
주인공 모모의 본명은 모하메드이다. 열 살의 아랍계 꼬마이다.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 로자아줌마는 2차 세계 대전 때 수용소를 경험했다.
학살은 면했지만 끔찍한 기억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그 뒤는 매춘으로 살아왔다. 나이가 들어 '엉덩이로 먹고 살 수' 없게 되면서는 유대인과 아랍계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거리에서 주위의 매춘부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일을 한다. 개중에는 아이를 맡기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모모도 그런 경우다. 기억에도 없는 부모는 어릴 적 그를 로자아줌마에게 맡기고 나선 소식을 끊었다. 로자 아줌마는 그런 아이들도 변함없이 거두어준다.
그녀는 유태인 학살 전인 열다섯 살 적 사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진의 주인공이
오늘날의 로자 아줌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 그들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짖고 있었다. (···)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자기 앞의 생』중에서-
나이가 들면서 로자아줌마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거동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녀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미 때가 너무 늦었고,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므로, 이제 신이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러 올 필요는 없다고 아줌마는 말했다. 정신이 맑을 때 로자 아줌마는 말하곤 했다 완벽하게 죽고 싶다고. 죽은 다음에 또 가야 할 길이 남는 그런 죽음이 아닌.
-『자기 앞의 생』중에서-
모모는 그런 아줌마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돌본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뒤에도 자신이 헤쳐나갈 '자기 앞의 생'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일생을 관통할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사람은 사랑없이는 살 수 없다."
흔하고 진부하지만 되새길수록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는,
그러면서도 너무 자주 잊고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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