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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2

정지아 소설집『나의 아름다운 날들』 한 여행동아리에서 어떤 회원이 "한 번은 해볼 만하다는 것들은 대개 한 번도 안 해도 되는 것들"이라고 했다. 여행을 가서 한 번은 먹어볼 만하다는 음식은 한 번도 안 먹어도 되고, 한 번은 가볼 만하다는 곳은 한 번도 안 가봐도 무방하다는 주장이었다. 긍정인 듯 부정적인 느낌이 있는 이 말은 처음 들었을 때 꽤나 합리적인 여행을 위한 팁처럼 들렸다. 내가 직접 해볼 때까지는 그 '한 번'의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시차적 허점은 있었지만. 정지아의 『나의 아름다운 날들』에는 11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소설 제목에 나오는 '천국', '브라보', '럭키', '즐거운', '아름다운', '절정' 등의 단어가 띄우는 밝은 분위기는 실제 내용에선 정반대로 그려진다. 여행팁처럼 '한 번은 해볼 만'한 것들이라 안.. 2023. 3. 30.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의 최근작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가 1989년 실천문학 봄호에 발표했던 『빨치산의 딸』의 연작이나 후일담이라고 해도 좋을 소설이다. 2003년 발표된 중편 「행복」도 마찬가지다. 세 가지 소설 모두 빨치산의 전력을 지닌 부모님의 삶과 그로 인해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딸 사이의 크고 작은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담고 있다. 작가는 "적이라고 배웠던 부모님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나의 성장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80년대였기에 가능했고 80년대다운(?) 소설이었던 『빨치산의 딸』에는 치열했던 부모의 젊은 시절이 담겨 있다.「행복」은 젊은 시절의 꿈을 끌어안고 유배지의 혁명가처럼 늙어가는, 아름답기는 했으나 생기 없이 공허해 보이기도 하는 부모의 노년을, 그리고『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부고를 .. 2022.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