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일3 그냥 이렇게 단풍들은일제히 손을 들어제 몸처럼 뜨거운 노을을 가리키고 있네.도대체 무슨 사연이냐고 묻는 나에게단풍들은 대답하네이런 것이 삶이라고.그냥 이렇게 화르르 사는 일이 삶이라고.- 조태일,「 단풍」- 아내가 여행을 가고 나 혼자 집을 지키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그래봤자 하룻밤, 1박 2일이니 유난을 떨 건 없지만 책은 자꾸 제자리를 맴돌며 읽게 되고 텔레비전을 켜놔도 집안에 고인 적막은 흔들리지 않았다. 층간소음을 걱정이라도 하듯 걸음도 조용조용 걷게 되었다. 딸아이가 '엄마 없이 보내는 시간이 괜찮아?'라는 전화를 주었다.'뭐 그냥 그렇지 ㅋㅋ.'대답을 하면서 속으로는 '심심해!' 하고 엄살을 부렸다.마침내 돌아온 아내가 실컷 구경했다는 단풍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내가 보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2024. 11. 7. 모기를 생각하며 때로는 사진 한 장이 그 어떤 소설보다 길고 다양한 서사를 담고 있을 때가 있다.무심코 들춘 사진첩에서 만난 40여 년 전 아내의 모습이 그랬다. 풋풋하고 청순한 옛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서 묵직한 저음의 북소리가 쿵하고 울렸다.군대 가기 전 어머니에게 여자친구의 존재를 처음 알렸을 때 어머니는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 벌떡 몸을 일으키며 말씀하셨다."세상에나!······ 너처럼 재미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아가씨가 다 있더나!" 무뚝뚝하고 될성부르지 않은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같은 여자로서 여자친구에게 안타까움과 동정을 느끼셨던 모양이다. 누나 역시 놀랍다는 표정과 함께 "내 동생을 좋아한다니 고맙긴 하지만 너를 남자친구로 선택한 그 애 안목은······" 하며 깔깔거렸다나의 대.. 2022. 5. 5. 이서방네 노을 빨간내복님 집에서 식사는 늘 길다.정확하게 말하면 식사와 식사를 하고 난 뒤의 뒤풀이가 길다.매번 밤이 늦어서야 일어서게 된다.빨간내복님 댁을 방문하기 전 아내는 내게 9시 전후에는 일어서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즐거운 자리에만 가면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나의 버릇에 대한 경고였던 것이다.그런데 이번에도 아내의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기특하게도(?) 빨간내복님 댁 벽에 걸려 있던 시계가 작동 이상으로 아내를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난 약속시간 지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빨간내복님 부부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하고 걱정을 할 뿐 나의 미필적 고의가 아닌 ‘의도적 고의’에 대해 그다지 탓을 하지 않았다. 아내도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즐거운 자.. 2013. 8. 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