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내복님 집에서 식사는 늘 길다.
정확하게 말하면 식사와 식사를 하고 난 뒤의 뒤풀이가 길다.
매번 밤이 늦어서야 일어서게 된다.
빨간내복님 댁을 방문하기 전 아내는 내게 9시 전후에는 일어서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즐거운 자리에만 가면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나의 버릇에 대한 경고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내의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기특하게도(?) 빨간내복님 댁 벽에 걸려 있던 시계가 작동 이상으로 아내를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난 약속시간 지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빨간내복님 부부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하고 걱정을 할 뿐 나의 미필적 고의가 아닌 ‘의도적 고의’에 대해 그다지 탓을 하지 않았다.
아내도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즐거운 자리였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번은 빨간내복님댁 집들이 만남이었다.
두어 달 전 새 집으로 이사하고 이제 막 집 단장을 끝낸 참이라고 했다. 새 집의 산뜻함에 감각적인 색상과 모양의 가구와 소품들이 더해져 마치 신혼집 분위기가 났다. 세련된 카페 같기도 했다. 지수맘님이 만들어주신 비빔밥에선 향기로운 들기름 냄새와 함께 거실의 소품들처럼 깔끔한 맛이 났다.
몇 번 소개한 것처럼 빨간내복님은 샌디에이고의 가객(歌客)이다.
그의 블로그( http://leebok.tistory.com/ )에는 직접 기타 연주를 하며 부른 노래들로 가득하다. 노래보다 감동스러운 것은 빨간내복님과 지수맘님, 그리고 지수, 이렇게 셋이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동화와 같은 삶이다.
상대방의 삶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것이 만남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라면 나는 그와 그의 가족을 만나면서 그런 부가가치를 크게 선물로 받은 사람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계셨다면 천지개벽이라며 놀라실 나의 서툰 부엌일의 시작은 사실 그가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식사를 하는 도중 서쪽 창문이 붉게 물들었다. 저녁노을이었다.
아내와 나는 와인잔을 들어 주인장 내외와 ‘짠!’을 나누었다.
떠나온 옛집에서 이삿짐에 끈끈하게 묶여 따라왔을 이 가족만의
사랑이,
행복이,
희망이,
건강이,
따뜻함이,
즐거움이,
절창의 노래와 맛있는 음식이
매일 저녁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노을과 함께 이 자리에 함께 하리라 믿으면서.
*빨간내복님의 성씨가 이(李)여서 제목 '이서방네 노을'이라고 붙여보았다.
그가 좋아하는 정태춘의 노래 '<장서방네 노을>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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