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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2

전라도의 절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습니다사랑도 나를 가득하게 하지 못하여고통과 결핍으로 충만하던 때 나는 쫓기듯 땅끝 작은 절에 짐을 부렸습니다 새심당 마루 끝 방문을 열면그 안에 가득하던 나무기둥 냄새창호지 냄새, 다 타버린 향 냄새흙벽에 기댄 몸은 살붙이처럼아랫배 깊숙이 그 냄새들을 보듬었습니다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고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아물지 못한 상실감으로 한 시절을오래, 휘청였습니다 ······색즉시고옹공즉시새액수사앙행식역부우여시이사리자아아시이제법공상불생불며얼 ······ 불생불멸······ 불생불멸······ 불생불멸······ 꽃살문 너머반야심경이 물결처럼 출렁이면나는 언제나 이 대목에서 목이 메곤 하였는데 그리운 이의 한 생애가잠시 내 손등에 앉았다가 포르르.. 2020. 7. 30.
발밤발밤2 -구례, 늦가을2 구례의 숙소는 쌍산재라는 한옥집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방문 창살이 선명하게 비친 하얀 창호지가 눈이 부셨다. 한옥이라 방바닥은 따뜻했으나 방안의 공기에서는 찬 기운이 느껴졌다. 잠에서 깨어서도 이불을 끌어당겨 어깨까지 덮고 한참을 뭉그적거리다 일어났다. 방에 딸린 간이 부엌에서 물을 끓여 작은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봉지 커피로 입가심까지 마치고 방문을 여니 이런! 뜻밖에 비가 추적이고 있었다. 아침에 섬진강변을 걸어볼 예정이었는데 낭패스러웠다. 쌍산재 주인에게서 우산을 빌리고 구례읍까지 나가는 택시를 부탁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일정을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야 했다. 우리를 데리러 온 택시 기사는 "좌충우돌 구례택시이야기(http://blog.naver.com/sswlim)" 라는 .. 2014.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