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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2

발밤발밤1 - 서울 약현성당 발밤발밤 올해는 아내와 함께 생활한 이래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7년의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을 하였고 바로 뒤이어 딸아이의 결혼이 있었다. 그 두 가지의 큰 변화에 사이에 대대적인 집수리도 있었다. 이사와 결혼과 집수리는 형태는 다르지만 그 경위는 짐 싸기와 짐 풀기로 단순화할 수 있겠다. 정신적인 긴장에 육체적인 노동이 더해진 시간이었다. 수고한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저기서 가을 단풍소식이 들려왔다. 아내와 나는 귀국 후 잠시 접어두었던 여행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에도 이와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한 인도네시아 주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였다. 첫 외국생활에서 돌아온 직후라 그런지 그때 나는 내 나라의 풍경과 내력에 대한.. 2014. 12. 5.
정약종 아구스티노와 유세실리아 이제 작년이 된 2008년 크리스마스날. 아내와 나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며 천주교인으로서 각각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이름 이외에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정약종 아구스티노. 아내는 유세실리아. 세례를 받기 전 정약종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 분이 천주교 전래 초기에 이 땅의 숱한 순교자 중의 한 분이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정약종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이 아니라 한국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대학자 정약용에 관한 책을 읽는 도중에 일종의 덤으로 그가 정약용의 형제임을 알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형제로 흑산도 유배 중에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을 그린 소설에서 그의 이름과 참혹한 죽음을 읽은 적도 있는 것 같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그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대충.. 2013.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