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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2

할아버지? 일요일, 산책을 하기 전에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았다. 운동장 한 구석에서는 고등학생 네댓 명이 동그랗게 모여 축구공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가볍게 톡톡 차는 패스 놀이였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강하게 공을 찼다. 공이 내 머리 쪽으로 날아왔지만 시야에 두고 있었기에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그때 공을 주으러 뛰어가던 아이가 소리를 쳤다. "야, 이 할아버지 맞을 뻔했잖아! (나를 보며)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손자저하들 이외의 사람에게 처음으로 듣는 호칭이었다. 내가 이젠 그렇게 늙어 보이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에 만난 아내에게 그 말을 했더니 큭큭큭 웃었다. "할아버지 맞잖아. 뭘 새삼스레 충격을 받았다는 투로 말해?" 충격까지는 아니라는 걸 , 다만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할아버.. 2024. 1. 23.
너의 여백에 있어 온 1000일 너와 하루종일 놀다가 온 뒷날에는 온몸이 네가 남긴 감촉의 여운으로 스멀거린다. 꼬옥 힘을 주어 안을수록 빠져나가려고 더욱 버둥거리는 너의 몸짓이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너의 종종걸음과 연이어 터지는 방울소리 같은 웃음이거나 울음. 당당하고 거침없이 뭔가를 요구하는 고집과 순간순간 놀이 주제를 바꾸는 현란함. 기껏 정리해 놓은 물건들을 한 순간에 흩트리는 개구짓에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놀이 대상으로 만드는 재주까지. '어른의 질서보다도 장난감의 무질서 속에 사는' 네 일상의 여백에 할아버지 친구로 있는 것이 벌써 1000일의 되었다니! 친구야, 고맙고 축하해. 2018.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