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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3

춤추는 은하 아침에 책을 읽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탐스러운 눈꽃 송이가 허공에 가득하다. 반가운 소식이 온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베란다로 나갔다. 어느새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고, 운동장엔 발자국을 찍으며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눈이 만들어준 평온한 천진난만 속으로 세상의 소란도 파묻혔으면 싶다. 오후부터는 다시 강한 바람에 추위도 따라온다고 한다. 창밖에 포근한 융단 깔리는 느낌 있어 눈 부비며 베란다로 나간다. 흰 눈이 8층 아래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건너편 축대를 한 뼘 가까이 돋우고, 흥이 남아 공중에 눈송이를 날리고 있다. 마당 가득 하얗게 살구꽃 흩날리는 아침 정선군 민박집이 8층 높이로 올라! 새 꽃밭을 찾아낸 벌들이 8자형 그리며 춤추듯 눈송이들이 느슨한 돌개바람 타고 타원을 그리며 춤.. 2021. 1. 28.
내가 읽은 쉬운 시 107 - 황동규의「죽로차」 *위 사진 : 추사가 초의선사에게서 받은 차에 대한 보답으로 쓴 웅혼한 필치의 걸작 "명선" (茗禪: 차를 마시며 참선에 들다.) 차나무의 학명은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로, 동백나무 속의 상록 활엽관목이라고 한다. 그 나무의 어린잎을 달이거나 우린 물이 차(茶)다. 차는 우리나라에 삼국시대에 전래되었다. 초의선사는 정조10년(1786)에 나서 고종 3년(1866)에 입적했다. 초의선사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불교의 더불어 쇠퇴한 차문화를 다시 일으켜 '다성(茶聖)'으로 불린다. 그는 차와 선이 한가지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바탕으로 다도의 이론을 정리하고 일상화했다. 그가 지은 『동다송(東茶頌)』은 차의 효능과 산지에 따른 품질, 만들고 마시는 법, 우리 나라 차에 대.. 2019. 5. 15.
내가 읽은 쉬운 시 9 - 황동규의「즐거운 편지」와 김정환의 「가을에」 시인 황동규는 고등학교 시절, 연상의 여대생을 사랑하여 한 편의 시를 지었다고 한다. 바로 「즐거운 편지」다. 1958년 그의 시단 데뷔작이기도 하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2014.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