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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춤추는 은하

by 장돌뱅이. 2021. 1. 28.

 



아침에 책을 읽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탐스러운 눈꽃 송이가 허공에 가득하다.

반가운 소식이 온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베란다로 나갔다.
어느새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고, 운동장엔 발자국을 찍으며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눈이 만들어준 평온한 천진난만 속으로 세상의 소란도 파묻혔으면 싶다.

오후부터는 다시 강한 바람에 추위도 따라온다고 한다.


창밖에 포근한 융단 깔리는 느낌 있어
눈 부비며 베란다로 나간다.
흰 눈이 8층 아래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건너편 축대를 한 뼘 가까이 돋우고, 흥이 남아
공중에 눈송이를 날리고 있다.
마당 가득 하얗게 살구꽃 흩날리는 아침
정선군 민박집이 8층 높이로 올라!
새 꽃밭을 찾아낸 벌들이 8자형 그리며 춤추듯
눈송이들이 느슨한 돌개바람 타고
타원을 그리며 춤춘다.
살랑대는 저 춤사위, 지구의 것 같지 않군.
그래 은하 춤!
은하 속 어디엔가 꽃피운 행성 하나 찾아냈다는 건가?
잠깐, 기억들 다 어디 갔지?
뇌 속이 물 뿌린 듯 고요해지고, 살랑대며 춤추는 은하가
천천히 돌면서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몸을 내민다.

- 황동규, 「춤추는 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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