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직접 전령사가 되고 싶었다. 한 손에는 만고강산을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그리고 거리의 아우성을 함께 몰아서 치는 징을 들고 또 한 손엔 바람찬 산마루턱에
봉화를 당길 횃불을 들고 어기차게 달리는 옛이야기의 주인공 말이다.
담아, 우리 집안이 본래 어떤 집안인 줄 아느냐? 우리 집안은 비록 화려하진 못했으나
한없는 이야기꾼의 집안이었음을 너희들에게 상기시키고 싶구나. (···)
한겨울 가루눈이 지향없이 내리는 깊은 밤 , 주린 속은 쓰리고 옛이야기는 달리고 화로의
불길마저 시들어가는 밤이면 울타리 너머 수수밭을 달리는 바람소리가 유난히 스산했다.
이럴 때면 할머니는 백두산 준령을 넘나드는 독립군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저 바람소리는 독립군의 말 달리는 소리라고. 왜놈 병정을 쥐 잡듯 하고 묏돼지 피로 허기를
달래고 산불에 의해 녹아내리는 얼은 물로 목욕을 할 정도로 무쇠 덩어리인 , 아, 신화 같은
우리 독립군. 이때 나도 이다음에 크면 독립군이 될 거라며 웃통을 벗고 으쓱대면 그때서야
증조할머니는 옷을 화롯불에 쬐여 목화처럼 하얗게 쓴 이를 잡곤 하셨다.
(···) 그러니 담아, 이제부터 이야길 좀 하자꾸나.
아니 이 땅에 사는 젊은이들, 나와 이마를 맞댈 친구들은 없는가. 이야기꾼은 원래가 입과
가슴뿐이니 불붙는 심장만 있으면 누구든 좀 오려무나. 와서 쩨쩨한 이야긴 아예 때려치우고
인간의 해방, 민족의 통일, 세계의 진보를 이야기하며 이 칠흑 같은 밤을 함께 깨뜨리자꾸나.
1979년에 나온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의 책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백기완 씨는 그런 이야기꾼이었다. '쩨쩨하지 않은' 그의 '인간의 해방, 민족의 통일, 세계의 진보'의
이야기는 칠흑처럼 어두운 시절을 견디는 위로과 용기가 되었다.
그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폭력과 맞선 춘향이의 싸움을 출세한 이몽룡이 해소하여 다시 체제
안으로 흡수해 버린 춘향전의 결말에 분개했다. 이몽룡은 출세한 관리로서가 아니라 사랑을
빼앗긴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민중과 함께 춘향을 해방시켜야 했다는 것이다. 지극한 효성의
심청전에서는 지배 계층의 맹종적인 수탈 논리인 공양미 삼백석의 허구를 읽어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프랑스 식민지의 아랍인을 죽인 『이방인』의 주인공은 부조리와
저항의 아이콘이 아니라 허깨비 같은 개인적 자의식에 매몰된 존재라고 질타했다. 그것은
1940년 대 저항정신의 세계적 보편성과 연결되지 않는 고립된 실존주의의 한계라고 했다.
생명을 건 싸움을 위해 대륙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둥지를 부수는 장산곶매의 결연한
자기 다짐과 웅혼한 기상도 특유의 걸걸한 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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