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07 - 황동규의「죽로차」

by 장돌뱅이. 2019. 5. 15.


*위 사진 : 추사가 초의선사에게서 받은 차에 대한 보답으로 쓴 웅혼한 필치의 걸작 "명선"
              (茗禪: 차를 마시며 참선에 들다.)


차나무의 학명은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로, 동백나무 속의 상록 활엽관목이라고 한다.
그 나무의 어린잎을 달이거나 우린 물이 차(茶)다. 차는 우리나라에 삼국시대에 전래되었다.

초의선사는 정조10년(1786)에 나서 고종 3년(1866)에 입적했다. 
초의선사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불교의 더불어 쇠퇴한 차문화를 다시 일으켜 '다성(茶聖)'으로 불린다.
그는 차와 선이 한가지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바탕으로 다도의 이론을 정리하고 일상화했다. 
그가 지은 『동다송(東茶頌)』은 차의 효능과 산지에 따른 품질, 만들고 마시는 법, 우리 나라 차에 대한 예찬을
등을 적은 우리 나라 최초의 차에 관한 책이다. 그는 현실의 일상 생활과 선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장 담그고 화초 기르는 것까지 허술히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불문에 몸담고 있었으면서도 유학, 도교 등 여러 지식을 공부하고 서예, 시, 문장에도 능했다.
또한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같은 학자나 사대부들과도 폭넓게 사귀었다.
특히 30세에 만난 동갑내기 추사 김정희와는 주고 받은 서신이 책 한 권을 이룰 정도로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추사는 초의에게서 차를 배웠다. 초의가 보내주는 차를 좋아하여 편지로 애교섞인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나는 스님을 보고 싶지도 않고 또한 스님의 편지도 보고 싶지 않으나 다만 차와의 인연만은
차마 끊어버리지도 못하고 쉽사리 부수어버리지도 못하여 또 차를 재촉하니 편지도 필요없고
다만 두 해 의 쌓인 빚을 한꺼번에 챙겨보내되 다시는 지체하거나 빗나감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거요.···



노노스쿨에서 커피에 이어 차에 관해 배우기 시작했다.
녹차와 우롱차와 홍차와 보이차가 같은 찻잎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놀랍다.
발효정도나 제조방법에 따라 나눠진다니 차도 커피만큼이나 복잡할 모양이다.
무엇이건 제대로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집에 돌아와 생각난 김에 차를 꺼내보니 양이 제법 된다.
지난 번 정리 때 꽤 많이 버렸던 것 같은데...... 
커피는 그나마 자주 마시게 되는데 차는 다기부터 잘 꺼내지지 않는다.
차를 배우는 동안만이라도 차를 마셔봐야겠다.
초의와 추사처럼 혹은 성진스님과 시인처럼 아내와 그윽히 앉아 꽁냥꽁냥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겨울 찬 바람이
서산 서남 들녘과 바다를 밀물처럼 하얗게 덮을 때
바람의 이랑 내려다뵈는 조비산(鳥飛山) 허리에서
우연히 만나
부드러운 죽로차 마시며 담소한 일이 벌써 반년이군요
선물로 주신 차,
물 끓이고 70도 언저리로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기다리는 시간이 무언지 늘 새로 느끼게 하는
그 까다로운 차를,
이제 집 밖에서 그리워하게끔 되었습니다.
차의 부드러움이 모르는 새
속마음을 얼마나 정교하게 짚어내기도 하는지
한 마리 조그만 개미가 되어 두 더듬이 비비며
찻잔 앞을 긴 적도 두어 번 됩니다.
우연도 인연이라는 불가(佛家)의 말은 잠시 접읍시다.
우연만으로도 모처럼 환합니다. 오늘은
개미 하나가 식은 죽로 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건져주었습니다.
 
           - 황동규의 「죽로차」 - 서산 부석사에서 만난 성전 스님에게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