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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05 - 김경미의 "야채사(野菜史)"

by 장돌뱅이. 2019. 5. 10.





오월은 봄나물이 끝난 시기라고 한다. 
마트 진열대에 수북이 쌓여있던 쑥과 냉이, 돌나물과 세발나물 등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내가 좋아하는 쑥이 사라져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노노스쿨에서 배운 애탕국을 선보일 수 없으니.
3월에 먹었던 도다리쑥국의 기억으로 올해의 쑥국을 마감한 셈이 되고 말았다.

끝물의 나물 몇가지로 노노스쿨에서 배운 야채 샐러드를 만들어 저녁 밥상에 올렸다.
시금치볶음과 강화도에서 만들어온 순무 김치까지 곁들였다.
지친 아내의 입맛이 돌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맛없었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 수북했겠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 나왔든가






야채가 애초에 꽃이고 사막도
오아시스였듯이
당신이 애초에 나였고
나 또한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 나왔다는 상상이 유쾌하다.

하여 아내여!

'그대의 먼지, 상처, 생활, 절망, 치유될 수 없는 어떤 생애' 따위
그것이 그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밥 한 그릇을 비울 수 있을까?
나아가 바로 그것이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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