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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시다 시인 황지우는 1980년 5월 서울대에 재학 중이었다.1972년 입학했는데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동하여 강제 입영되었다가 복학하여 논문 준비 중이었다.그 무렵 그는 광주에 있던 큰형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광주가 쑥대밭이 되었고 지금도 금남로에 상공에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으니 황지우는 물론 동생도 절대 광주에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동생도 시국 문제로 지명수배 중이었다.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큰형 자신은 통역을 자원하여 외신기자들에게 계엄군의 만행을 알렸다.그가 번역해 준 내용은 를 통해 세계에 전해졌다고 한다.5월 30일 황지우는 '땅아 통곡하라'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만들어 가방에 담고 집을 나섰다. 정장을 하고 꽃다발을 들어 위장을 하였다. 종로 단성사 앞에서 그 유인물을 뿌리고 이동하다가 청.. 2024. 5. 18.
내가 읽은 쉬운 시 108 - 이시영의「무명용사의 무덤 곁에서」 *그림 출처 : 딴지일보 시간과 역사를 거슬러 가는 거짓과 위선의 여전한 소음. 그 더러운 입들 그만 닫으라. 해마다 오월만큼이라도 우리는 목숨 같은 그리움과 부끄러움으로 돌아볼 것이다. 너를 여기에 두고 화해의 시대를 외쳤구나 우리는. 총창으로 그어진 팔을 높이 들어 술잔을 부딪치며 우리는 어느 새 우리의 상처를 잊었구나. 민주주의가 온다는 광장에서 한바탕 춤을 춘 뒤 우리는 우리의 목발을 잊었구나 너를 잊기 위해 고개 저어 마침내 무덤 속 페인트칠한 채 누운 너를 잊기 위해. 그러나 햇빛 아래 네 온몸의 페인트를 벗겨내지 못한 봄은 더 이상 우리의 봄이 아니다 거짓이다 위선이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좁혀드는 총칼의 숲에 밀리다가 차가운 꽃 한 송이로 스러진 용사여 젊음이여 너를 여기 둔 채 외.. 2019.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