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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3

그해 6월의 짧은 기억 80년대 싱가포르에서 온 회사 손님이 있었다.그는 제품 검사차 일 년에 서너 차례 한국에  오고 한 번 오면 한 달 정도씩 머무르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담당이 되어 '시다바리'를 하다 보니 일을 떠나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자상한 가장이었다. 자주 지갑 속 어린 딸아이의 사진을 꺼내보며 그리워했다. 일을 마치면 술자리를 탐하는 다른 검사관들과 달리 시장이나 백화점을 돌며 딸에게 줄 갖가지 인형들을 사모으러 다녔다. 함께 사진을 볼 때 '이쁘긴 하지만 내 딸이 훨씬 이쁘다'고 내가 말하면  'How come?'을 반복하며 '발끈'을 과장하기도 했다. 세상에 망고라는 과일이 있고, 우리 가족에게 그걸 처음 먹게 해 준 사람도 그였다. 어느 날 그가 백화점에서 바나나의 .. 2024. 6. 11.
그 기억들이 자욱한 최루에 맞서는 뜨거운 거리였다 가투를 치르다 다리를 다쳐 바지에 핏자국 배었다 골목길 달리는데 앞에서 검문 중이었다 누군가 옆에 와서 팔짱을 꼈다 편안하게 가요, 부부인 척하고 임신 중인 불룩한 배가 눈에 들어왔다 그이가 피 묻은 바지 위로 몸을 붙였다 낯선 친절의 그늘에 숨어 골목을 나왔다 조심하세요 치마에 붉은 얼룩이 눈에 들어왔고 인사도 못한 채 거리로 뛰어들었다 그 아득한 길을 떠나와서도 검문은 길목마다 나를 기다렸다 막다른 길에서 멈칫거릴 때 편안하게 가요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데 내 피 묻은 바지를 가리던 붉은 얼룩 치맛자락이 보인다 - 이은래,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시위대가 어디선가 달려오는 무장 경찰을 피해 파편처럼 시장으로 뛰어들면 그들의 등.. 2023. 6. 11.
쓰러진 탁자 이태 전인가 서울 시민청에서 '포스트 트라우마'라는 이름으로 열린 故 김근태 추모 전시회에는 다리가 세 개뿐인 사각형 탁자가 쓰러져 있었다. "불완전한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탁자의 수평이 유지될 수 있도록 없는 다리 한쪽을 받치고 버팅겨주는 그 '누군가들'. '성문밖'의 그들. 그곳 성문밖으로 우리는 가야만 하리라 우리의 형제가 짓밟혀 버려진 곳 우리의 하늘이 찢겨진 곳 성문밖 그곳으로 가야만 하리라 이천년 전 예루살렘의 예수 십자가에 못박혀 버려진 성문밖으로 -백무산의 시, "성문밖 그대의 목숨 곁으로" 중에서- *출처 : 87년 6월 로이터 통신 정태원의 사진 2017.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