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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멕시코 및 중남미

마추삐추 가는 길1

by 장돌뱅이. 2014. 5. 6.

페루의 수도 리마의 국제공항에 밤 열두 시에 가까운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미국 샌디에고에서 출발, 차로 국경을 넘어 멕시코의 티후아나 TIJUANA 공항에서
AEROMEXICO 를 타고, 멕시코시티를 경유하는 (layover 포함) 열서너 시간의
긴 여정 끝에 리마로 온 것이다.

한국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시차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침 일찍부터 출발을 서둘러야 했던 아내는 리마까지 오는 동안
자리에만 앉으면 비몽사몽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리마의 시간은 샌디에고보다 3시간을 앞서간다.
한국과는 13시간의 차이로 완벽하게 낮과 밤이 뒤바뀐 시간대인 것이다.


*멕시코시티 공항의 AEROMEXICO 라운지에서

숙소는 공항 출구와 불과 길 하나를 사이를 둔 COSTA DEL SOL RAMADA.
우리처럼 이튿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최강의 위치를 지닌 호텔이었다.
예약을 한 여행사의 표현에 따르면 ‘공항문을 열고 나와
열 발자국만 걸어가면 호텔 문을 열 수 있는 거리’였다.

페루의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MARIO VARGAS LLOSA 의
소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읽은 적이 있다.
아마존 지역의 군대에서 일어난 일을 희극적으로 다룬 내용이었다.
소설을 읽다가 문득 페루도 아마존 지대를 포함하고 있나? 하는 의문에
남미의 지도를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그때까지 난 그냥 막연히 아마존은
브라질 국토의 일부이겠거니 하는 무지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 수량의 20%를 바다로 흘려보내며,
면적은 남한의 70배에 달한다는 광활한 아마존은 단순히 브라질만의 아마존이
아니라 남아메리카의 아마존이었다. 브라질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나라들도 일부분을 나눠 갖고 있다.
페루는 아마존의 상류 지역에 접해 있으며 아마존 면적의 10% 이상을 자치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듯 남미에서는 국가 사이에 많은 것이 공유된다.
안데스산맥이 또한 그렇다. 이 거대한 산맥은 콜롬비아에서 남미의 서쪽 해안을 따라
페루를 지나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남쪽 끝까지 장장 7500km나 이어진다.
어느 한 나라만의 안데스일 수 없다.

역사·문화적으로도 그렇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마추삐추는 페루에 있지만
그 근본이 되는 잉까제국은 전성기에 북으로는 에콰도르와 콜롬비아에서부터
남으로는 칠레의 중부 지역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통치했었다.

때문인지 국적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의 근원적 상징으로
마추삐추를 받아들인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전체 아메리카로 자신들의 정체성의
외연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체 게바라 CHE GUEVARA 의 현실 인식의 토대가
아르헨티나에만 국한되지 않았듯이.


* 마추삐추를 찾은 칠레의 민중가수 빅토르하라 VICTOR HARA. 그는 1973년 칠레 군부 쿠테타 세력에 의해
  학살 당했다. (사진 출처 : 조안하라의 『끝나지 않은 노래』)


아마 15세기 이후 서구 침략의 동일한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데다가,
이후 남아메리카 개개 나라의 고난으로 점철된 정치경제적 상황의 전개가
서로 매우 비슷한 동질성을 지닌 탓인지도 모르겠다.

남아메리카의 문화적 근원으로 마추삐추를 “가장 은밀한 생식기”로 표현한 바 있는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1943년 마추삐추를 다녀온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정상에 오르자 고대의 석조 구조물들이 신록이 푸릇푸릇한 안데스의 높은
   봉우리들을 울타리 삼아 감싸여 있었다. 수백 년 세월의 흐름에 좀 먹히고
   시달린 성채에서 급류가 휘몰아쳐 내려왔다. 하얀 안개가 윌카마유 강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라 왔다. 돌들의 배꼽, 자부심에 가득차 있는 높이 치솟은 세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도 소속되어 있는 그 버림받은 세계의 한가운데 서서
   나는 자신이 무한히 작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 손이 오래 전 어느 시간에
   그 곳에서 고랑을 파고 돌을 닦으며 일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칠레인이자 페루인, 아메리카인임을 느꼈다.
   그 험난한 고원에서, 그 거룩한 흩어진 폐허에서 나는 새 시(詩)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믿음의 원리를 찾았다. 나의 시 “마추삐추 산정”은 그 곳에서 태어났다.

                                         -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추억 MEMORIAS』-

체크인을 하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호텔에서 제공하는 쿠폰으로 로비에 있는 바에서
웰컴드링크를 마시며 페루와, 아니 남아메리카와의 첫 인연을 시작했다.
호텔 밖 풍경은 아내와 나의 오랜 꿈인 마추삐추를 상상하기에는 아직 우리네 도시와
너무 닮은 풍경이었지만 아내와 나는 비행기와 차로 서너 시간 거리에  그곳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은 흥분된 저녁이었다.

*여행시기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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