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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멕시코 및 중남미

마추삐추 가는 길(끝)

by 장돌뱅이. 2014. 5. 6.

마추삐추에서 기차를 타고 꾸스꼬로 돌아와 하루밤을 잤다.
이제 고지에 적응이 되었는지 고산증의 두통은 없었다.
일부러 빠르게 걸어보아도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익숙해질려니 떠나게 된 것이다.

너무 급작스럽게 떠나온 여행이었다. 미국생활을 정리하는 말년의 부산스런 일정 속에
가까스로 만들어 넣었던 것이다. 미처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어 난생처음 가이드가
딸린 여행도 경험해 보게 되었다.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출발하는 것이 시차와 비행시간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속에 오래 전부터 생각만 해온 터였다.

짧은 일정 때문에 염두에 두었던 띠띠까까 호수, 우유니 사막, 이과수폭포 등을 포함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욕심이야 원래 끝이 없는 것이므로 큰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는 가게 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태평양을 건너와 이국땅에서 만 6년을 넘게 살았으니 역마살이 남다르다고 해도 좋을
팔자지만 한 곳이라도 더 가보아야겠다는 악착같은 여행에 대한 욕심이 약해진 것은
아내와 내가 나이가 들면서 생긴 변화 중의 하나이다.
물론 아직 완벽하게 초탈한 것은 아니다.
다만 포기에 대한 결정만큼은 예전에 비해 신속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시간은 유한하고 세상은 넓어 어차피 세상의 모든 곳을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꾸스꼬에선 나가기도 귀찮아 그냥 숙소에 딸린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가 나쁘지 않았다. 비 때문에 격전을 치르고 온 듯한 하루였지만 크게 피곤하지도 않았다.
아마 마추삐추라는 오랜 꿈의 현장을 보고 왔다는 흥분이 몸에 각인된 탓이리라.

깊고 편안한 잠을 자고 난 아침,
리마의 공항보다 더 혼잡한 꾸스꼬의 공항에서 정신없는 체크인을 하고 리마에 도착했다.
정오 무렵이었다. 뒷날 아침 일찍 샌디에고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했기에 숙소는
올 때처럼 공항에서 ‘열 발자국’ 떨어진 COSTA DEL DOL RAMADA로 잡았다.

체크인을 하고 나니 오후 반나절과 저녁시간이 리마를 위해 남게 되었다.
처음엔 박물관 관람을 생각했었다. 리마에는 황금박물관, 국립박물관 등
다양하고 볼만한 박물관이 많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꾸스꼬와 마추삐추라는 거대한 ‘박물관’을 보고 온 직후라 더 이상의 ‘박물관’은
감성적으로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었다. 리마의 박물관은 언제 있을지 모를
다음 여행을 위한 이유이자 목표로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우리는 대신 리마의 ‘강남’이라는 미라플로레스 MIRAFLORES 로 나갔다.
치안이 가장 확실하여 밤에 거리를 걸어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숙소의 직원이 추천해 주었다.

미라플로레스의 한 식당에서 세비체 CEVICHE를 안주로 삐스꼬싸우어를 마셨다.
세비체는 어패류를 레몬즙에 살짝 절인 후 야채, 향신료로 버무린 페루의 대표 음식이다.
우리가 간 식당에서는 다양한 세비체를 만들어 주었다. 일상에서의 해방을 위해 여행을
떠나온 것인데 막상 여행이 끝나니 또 다른 해방감이 느껴졌다.
거푸 삐스꼬싸우어 몇 잔을 계속 들이킨 것도 그런 기분 탓이었다. 
 

 

그리고 약간 얼큰해진 상태로 밖으로 나와 특별한 목표 없이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미라플로레스는 공항 옆의 숙소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의 남루한 거리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있는 구분이지만 리마에서는 선으로 그은 듯 그 차이가 너무나 확연했다. 
산뜻한 현대식 분위기가 가득한 거리였다. 고층건물과 고급아파트, 귀에 익은 패션, 커피, 음식의
상표들이 즐비해서 이곳이 먼 남미의 도시라는 사실조차 잊게 할 정도였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들이었다.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동냥아치나 잠을 자는 노숙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페루를 점령한 스페인은 1535년 수도를 꾸스꼬에서 리마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꾸스꼬는 해안과 너무 떨어진 내륙이라 물자의 보급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수탈 물자의 본국 반출을 위한 항구도 필요했을 것이다.
리마는 그렇게 스페인의 편의에 의해 세워졌다.

부와 가난은 식민지 시대의 형태가 그대로 이어져 백인과 인디오, 리마와 내륙으로
나뉘어지고, 도시에서도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어졌다.
리마에는 인구 1만 명당 의사가 28명이나 되지만, 안데스 지역에는 고작 2명에 불과하다는
한 통계가 이런 상황을 암시한다.

‘부유함’(RICH)은 국왕을 뜻하는 라틴어의 'REX'에서 는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리치’의 본래적 의미는 경제적인 힘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말이다.
실제에서도 경제력과 권력은 이음동의어이다.
부는 권력을 만들고 다시 권력은 부를 축적하는 순환의 고리인 것이다.

“페루는 황금의자에 앉은 거지”라는 누군가의 독설은 수정되어야 한다.
페루에는 ‘황금의자’에 앉은 사람과 그 ‘의자놀이’에서 밀려난 '잉여인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긴 어디 페루만의 문제이겠는가.

어느 사회이건 특정 인종이나 지역, 계층의 집단적 가난은 사회의 부와 권력이
작동시키는 순환고리의 부산물이다. 가난은 운명이나 불운이 아니라,
동정이나 자선의 대상이 아니라,
그 순환고리에 국가의 정책이 올바르게 개입하여 제거해야 할 불의인 것이다.

 



다음날 아침 예정대로 비행기는 리마의 호르헤 차베스 공항를 이륙했다.
아침 햇살 속에 리마와 바다가 보였다. 짧은 5일 동안의 여행이었지만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여행자가 그들에게 보답으로 돌려줄 것은 별로 없었다.

다만 국민의 90%이상이 카톨릭 신자인 페루에,
그들이 믿는 예수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여 인간들에게 전해준 평화가 함께 하기를,
그 평화로 페루의 모든 사람들이 위로 받고, 또 어두운 상처도 치유 받을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잠시, 그러나 간절히 빌어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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