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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멕시코 및 중남미

마추삐추 가는 길5

by 장돌뱅이. 2014. 5. 6.

밤잠을 깼다. 빗소리가 들렸다. 아니 빗소리 때문에 잠을 깼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하는 마음에 문을 열고 확인했다. 장대비였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날씨가 좋아서 일기예보가 틀린 것으로 생각하고 좋아했는데......
하필 이번 여행의 절정인 마추삐추 MACHUPICCHU 를 오르는 날에 비라니!
이제 바랄 것은 한 가지. 비가 오려면 구름 한 점 남기지 말고 좍좍 쏟아져
밤사이 파란 하늘만 남는 것뿐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문을 열고 확인을 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탁한 구름까지 낮게 내려와 호텔 건너편 산은 아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곳은 1년에 7개월 이상 비가 오는 곳이라고 했다.
확률 50% 미만의 행운은 없는 것이 정상이라고 누가 묻지도 않는데 자위를 해보았다.
“......”
“......”
“그래도 그렇지 젠장!”
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던 비옷을 꺼내야 했다. 이른 식사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순환을 하며 여행객들을 마추삐추로, 혹은 마추삐추에서 다시 마을로
실어 나르는 버스였다. 버스는 지그재그로 에돌아가며 가파른 경사길을 올랐다. 위로 올라갈수록
버스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쪽은 구름으로 가리워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추삐추의 입구는 인파에 비까지 더해져 장터처럼 수선스러웠다.
드디어 출입구를 지나 첫 발을 마 추삐추의 땅에 내려놓았다. 오래 꿈꾸어온 순간이었다.
잡지에서, 책에서, 마추삐추의 사진을 볼 때마다 상상하던 순간이기도 했다.
싸구려 비옷을 입고 우중충하게 들어서던 모습은 한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온통 우윳빛 비안개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바람에 안개가 걷힐 때만 마추삐추의 일부분이 드러났다가 이내 사라지곤 했다.
비와 구름은 바람까지 가세를 하여 더욱 기세를 키우고 있었다.

일차 행선지는 마추삐추를 지나서 있는 와이나삐추 WAYNAPICCHU 였다.
마추삑추의 전경을 잡은 통상적인 사진을 보면 뒤쪽 배경에 우뚝한 봉우리가
'젊은 산' 와이나삑추다. 이에 비해 마추삑추는 ‘늙은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와이나삑추는 하루 200명으로 출입자를 제한하는 관계로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입구에서는 출입자와 명단을 일일이 대조했다. 간단한 대조일 것인데 왜 그런지
미국 입국 심사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와이나삑추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계단길이었다. 아내를 앞세우고 젖은 길을 조심스레 걸어야 했다.
원래는 와이나삑추 오르는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마추삑추를 조망하고 싶었다.
하지만 심술궂은 비구름은 뒤쪽 풍경을 부지런히 지우며 따라왔다.
산행의 목표가 뒤를 돌아다보는 것이나 돌아볼 것이 없는, 그렇지만 발걸음은 계속
앞쪽 정상을 향해야 하는 이상한 산행이었다.

어제 기차에서 만났던 미국인 형제를 중턱에서 만났다. 유난히 엄살을 피우던
형에게 장난스레 물어보았다.
“비가 오는 마추삐추가 어떠냐?”
“ㅎㅎㅎ 좋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최소한 나스까의 비행기처럼 무섭지는 않으니까.”
비옷 속에서 그는 크게 웃었다. 해맑은 웃음소리가 날씨 때문에 실망한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
유쾌상쾌한 분위기를 만드는 형제들이었다.

다시 마추삐추로 내려왔다. 다행스럽게도 빗발은 조금 가늘어져 있었다.
더불어 비안개도 많이 사라져 시계가 많이 트여 있었다. 마추삐추의 곳곳은 색색의 비옷을 걸친
사람들로 이른 아침보다 더욱 북적였다. 울긋불긋한 비옷은 산뜻하고 따뜻한 시각적 효과로
날씨가 만든 우중충한 분위기에 오히려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빗속을 천천히 걸어서 마추삐추를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흔히 보는 마추삐추의 사진을 찍는 지점인, '잉까의 초소 RECINTO DE GUARDIAN' 로 향했다.

책을 보면 마추삐추는 크게 신전과 주거지, 그리고 식량을 재배하는 농지로 구분된다.
신전은 서너 곳이나 되며, 주거지도 일반인 지역과 귀족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농지는 마추삐추를 감싸며 조성되어 있다. 그 외에 광장, 천문관측소, 묘소, 창고 등이 있다.
그러나 그런 개별 지점에 대한 감상은 아내와 나의 첫 마추삐추행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세부적 지식의 바탕이 마련되지 못했기에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다음 기회(언제일지, 또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여행에서 늘 무엇인가를 미루고
다음을 기약한다.)로 미뤄두기로 했다.

우리의 목표는 마추삐추를 조망하는 높이에 올라 그냥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사실 아내와 내가 해왔던 모든 여행의 방식은 ‘그냥 보기’였다.
산행으로 치면  거친 숨과 땀으로 산의 속살 깊은 곳까지 들어가
산이 준비한 최대한의 진면목을 느껴보는 농도 짙은 산행이 아닌,
그저 들머리의 적당한 곳에서 먼 산 정상을 바라보며 서성이는 식의 얕은 산행
- 그러나  그것만으로 아내와 나누는 여행은 늘 매력적이었고 흡족했다.

마추삐추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올랐다. 그 중에서도 사진을 찍기에 제일 좋은 장소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 줄에 끼여 ‘증명사진’을 찍고 나왔다.
그리고 절정에서 비껴난 옆자리에 비옷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그곳에 않아서 마추삐추를 바라 볼 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거의 멈춰가고 있었다. 간간이 흩뿌리는 비는 앉은 채로 그냥 맞기로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서 마추삐추를 내려다 보았다.
두서없는 상념들이 마추삐추에 드리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달콤하고 뿌듯한 시간이었다.

마추삐추는 위치부터 기존의 상식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잉까인들은 왜 하필 바람도 드센
높은 산등성이에 마추삐추를 세웠을까? 산 아래 강변의 평지에 도시를 세울 수 없는 사정이라면
정상에서 살짝 아래쪽 팔부 능선에라도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
언제 세워지고 왜 세워졌을까? 언제 버려지고 왜 버려졌을까?
누구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궁전이다, 신전이다, 요새다 하는 식의 마추삐추에 대한 어떤 설명도 추측이고 짐작일 뿐이다.
인간이 세운 어느 건축물이 직각이나 직선, 그리고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수백 년을 견뎌왔던가?
인간이 경작한 어느 논밭이 위태롭게 절벽에 붙어 있으면서도 한 시대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폭우와 지진의 자연재해로부터 다른 건축물을 든든하게 지켜줄 만큼 유용했을까?

마추삐추는 그냥 그렇게 거기 있어왔고 지금도 있다.
존재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히 증명하고 표현한다.
존재가 내력이고 이유이고 결과이다. 역사이며 과학이고 예술이다.

우리가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단절의 시공간에 마추삐추의 신비와 위엄이 자리한다.
오직 상상력만이 그것들과 접속할 수 있다.
잉까의 시대에는 분명 존재했으나 어느 순간 인류가 잃어버린 상상력 - 마추삐추에 대한
참다운 이해는 새로운 상상력의 창조가 아니라 바로 그 잃어버린 상상력의 복원에 있는지 모른다.

1911년 마추삐추를 발견한(?) 한 미국인 ‘인디아나존스’는 처음에 마추삐추를
잉까의 비밀 황금도시인 빌까밤바 VILCABAMBA로 상상 아닌 착각을 했다고 한다.
오늘 날에도 그런 착각은 계속된다. 마추삐추라는 ‘상품’의 개발과 관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본의 이권 다툼이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이가 동화 속 어린왕자였던가?
마추삐추의 60%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 존재한다고 한다.

   천년의 시간은 산정의 요새에서 한 점도
   흐르지 못하고 그대로 고여 있었고
   그들의 신은 여전히 공중을 운행 중

           
-김혜순의 시, 「잉카통신」중에서-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꾸스꼬로 돌아갈 기차시간에 맞춰야 했고 배도 고파왔다.
우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시였지만 구름을 거두고 자신의 민낯을 보여준
마추삐추에 감사의 작별을 고했다. 감정이 격했는지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좀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학창시절부터 지켜본 적이 없는 다짐도 덧붙여 가면서.

하산버스에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창문에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이젠 뭐 상관없으니까. 기왕 내릴 비면 좍좍 오는 게 좋겠다.”
실없는 위악을 떨자 아내가 혀를 찬다.
“쯔쯔쯔......장돌뱅이의 심술이 저 수준인 걸 누구 알겠나!”

아내의 탄식을 그분이 받아들였는지 버스가 아랫마을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그친 것은 물론 파란 하늘에 햇살까지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나 다시 돌아갈래!”
나는 영화 “박하사탕”의 설경구처럼 울부짖었다.

기차를 타기 전 페루의 꼬치구이인 안띠꾸초 ANTICUCHO에 삐스꼬싸우어로 배를 채웠다.
이로써 실질적인 여행이 끝이 났다. 이제 꾸스꼬로 돌아가 하룻밤을 자고
수도인 리마로 돌아가는 여정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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