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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1 - 고은의 「산 길」

by 장돌뱅이. 2014. 5. 10.


오늘 우여곡절 끝에 남북 이산가족의 만남이 금강산호텔에서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산가족이 8-90대의 고령.
새삼스레 다시 설명할 필요 없는 우리 민족의 비극이자
 "남북통일 안 되면 아무것도 뜻없는" 이유입니다.

   바람더러 너나들이로 하루 내내 걸었습니다
   등짐도 정들으니 내 등때기 한몸이어요
   원통거리 막국수 술 석잔 먹고
   해는 깜박깜박 이 물 저 물에 저물었습니다
   나그네새 북으로 가니
   내년에 다시 오겠지 하고 바래주어요
   아니됩니다
   아니됩니다
   내 아무리 이대로 복될지라도
   몽구리 중놈으로 복될지라도
   걸로는 아니됩니다
   외진 데 들꽃 바라보며 물 보며
   하루 내내 강원도 산길 걸으며 맘먹었어요
   남북통일 안되면 아무것도 뜻없습니다
   그리운 그리운 우리 민주주의도 뜻없습니다
   어느 뜻도 뜻이라면 통일이어요
   저문 산골 황소 앞세워 구시렁구시렁 돌아가는 이
   오늘밤 횃대 밑 깊은 잠 꿈에서나마
   우리네 온전한 나라 그 나라에 살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우리네 살다가 갈 곳 두동강 뚝딱 아니어요
   이대로 먹고 자는 두 동강 아니어요
   남북통일되는 날 내일입니다
   천만번 곱한 내일입니다
   내일을랑 청봉 올라 하늘이 되어
   내 목 잘라 금강산께 저기저기 바라보렵니다.
                                   - 고은, 「산 길」-


짧은 2박3일의 만남이 끝나면 이산가족은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 할 수 없습니다.
만남은커녕 편지를 주고 받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아픈 사람은 한숨만으로도 숲을 흔들 수 있다'고 하던데,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오래된 슬픔과 탄식과 염원이라면
더 크고 복잡하고 강고한 그 무엇도 흔들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아무쪼록  오늘만큼이라도 두 손을 맞잡은 이산가족들의
어깨위에 이제껏 못 나눈 정이 따뜻하게 내리는 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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