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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2 - 정지용의「춘설(春雪)」

by 장돌뱅이. 2014. 5. 10.

번개 같이 한국엘 다녀왔다.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라는 귀국 인사를 쓰지 못하는 건
맥빠지는 일이지만, 어떤 상황에서건 한국행은 반가운 일이다.

한국에 있는 동안 날씨가 너무 포근해서 좋았다.
우수가 지나 이젠 봄 기운이 완연한 것 같다고 의례적인 짐작말을 했더니
주위 사람들이 올 겨울 내내 별로 춥지 않았다고 알려주었다.
 


식당에서 햇쑥을 넣어끓이는 도다리쑥국을 먹었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쑥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다.
식당 주인에게 말했더니,
"2월쑥은 원래 향기가 없어요." 한다.
좀 더 봄이 무르익어야 한다면서.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어라.

  
옹숭거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긔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 정지용, 춘설(春雪)」-

 

미국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일본 전통시 하이쿠(俳句)를 읽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시가 되겠다.
하이쿠는 단 17자로 인생과 자연의 의미를 담아내는 정형시이다.
계절을 의미하는 단어(季語)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며
설명이나 주장이 없다. 제목도 없다. 
상상의 여백이 큰 시다.

   오래된 연못이여
  
개구리 뛰어들어
  
물 치는 소리
  
(古池や蛙飛こむ水のおと)

      - 마츠오 바쇼오(松尾芭蕉)-

개구리가 물에 뛰어드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고요함.
파문이 가라앉은 뒤 고요함은 더욱 깊어지리라.
몇 해 전 친구들과 강원도 인제의 아침가리골을 걸으며
그와 같은 깊은 적막을 경험한 적이 있다.

어서 봄이 와라.
돌아가 다시 그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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