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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부재에 대하여

by 장돌뱅이. 2014. 10. 8.


아내와 결혼한 이래 가장 오래 떨어져 지낸다.
중간에 잠깐 본 적이 있지만 어언 6개월 가까이 접어든다.
혼자 있는 시간은 오래될수록 익숙해지기는커녕
점점 어색해져갈 뿐이다.

아내와 있으면 작아만 보이던 우리 아파트가
혼자 있으니 휑하니 무척 커보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방까지 가는 길이 멀다.

주말이면 아내와 이곳저곳으로 바쁘게 다니느라
늘 미끈하게 지나가는 시간이 아쉬웠다.
그러나 이젠 하루가 서른시간이라도 되는 양,
흔해서 주체하기 힘들다.
시간이 꾸역꾸역 다가오고 지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

새로운 풍경을 대할 때마다
아내를 세우고 찍은 사진들이
자주 사진기의 저장용량을 넘어
부지런히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는데,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은 한번도 옮길 필요가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주말 늦은 밤.
멀리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있잖아... 미드 "로스트" 완결편 준비해놨어.
빨리 와서 같이 보자."


아픈 아내 멀리 요양 보내고
새벽 일찍 일어나
쌀 씻어 안치고 늦은 저녁에 사온
동태 꺼내 국 끓이다
나는 얼큰한 것을 좋아하지만
아이 위해 '얼' 빼고 '큰' 하게 끓인다
가정의 우환과 상관없는
왕성한 식욕 위해
나의 노고는 한동안 계속되리라
아내에게서 전화가 오면
함께 사는 동안 한 번도
하지 못한, 살가운 말을 하리라
갓 데쳐낸 근대같이
조금은 풀죽은 목소리로

-이재무의 시, "부재에 대하여" -

*2010년 7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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