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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전주 한옥마을에서 빗소리를 듣다.

by 장돌뱅이. 2012. 4. 17.

전주 풍남동의 한옥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아무 것도 한 일은 없었다. 그냥 문가에 앉아 마당 가득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빗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원래는 오후 세시 도착 즉시 자전거를 빌려 한옥마을의
골목골목을 돌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꾸물대던 날씨가 한옥마을의 주차장에
차를 세울 무렵 기어코 비를 쏟기 시작했다. 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고 천천히 빗속을
걸어볼 생각이었지만 빗발이 점점 거세지면서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가 묵었던 방은 양반 가옥을 재현하였다는 한옥생활체험관 안채의 안방이었다.
체험관에서는 규수방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규수방은 문갑과 장롱, 문방소품과 백자
한 점이 있는 직사각형 형태의 방이었다. 앞마당에는 담장 밑에 장독대가 있고 뒤쪽으로
난 문을 열면 사랑채와 마당이 바로 내다 보였다.
한옥생활체험관은 이름 그대로 한옥의 체험을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안채와 사랑채에
여러 방을 달아내어 숙박공간을 최대한으로 넓혀 놓았다. 그런 모습이 조금은 숙박업소의
분위기를 풍겼지만 그런다고 방에 앉아 비 내리는 풍경을 내다보는 우리 가족의 오붓한
시간까지 헤칠 정도는 아니었다.

지붕의 기와를 타고 떨어지는 낙숫물이 점점 굵어졌다. 처마 밑 마당엔 동그란 낙숫물
자국이 생겨났다. 함께 문밖을 내다보던 딸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불을 깔고
낮잠에 빠져들었다. 아내와 나는 문 하나씩을 차지하고 책을 읽다 간간히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다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아내는 “좋다. 그치?” 하는 말을 되풀이했다.
빗발은 수그러들 기세 없이 점점 거세졌다. 방과 마당은 빗소리로 가득 했다.
체험관에서 막 삶은 감자를 내왔다. 껍질을 벗겨 소금에 찍어 먹는 맛도 꽤 쏠쏠했다.

딸아이가 잠에서 깨어난 저녁, 빗줄기가 잠시 가늘어진 틈을 타 우리는 밖으로 나가
술을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아내와 내가 빗소리가 좋았다고 감탄을 늘어놓자
딸아이는 그것을 움직이는 것보다 고여 있는 것을 선호하게 되는 나이 탓으로 돌렸다.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그보다는 빗소리가 아내와 나의 어릴 적의 기억에 닿아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든 자연과 관계된 모든 유년의 기억은 행복한 것이니까.

어릴 적 살던 옛집에서 안과 밖의 경계란 얇은 창호지가 발라진 문이 전부였다.
때문에 빗줄기가 지붕과 나무와 울타리와 장독대와 마당과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온갖 소리들은 막힘없이 그대로 문턱을 넘어 방안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는 세상의 모든 소리로부터 효율적인 차단과 폐쇄를 장점으로 한다.
때문에 빗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베란다의 문을 활짝 열어두어야 한다.
그러나 아파트에선 비가 세차게 내리지 않으면 귀를 세워 들어도 그 소리를 듣기 힘들다.
빗소리는 비와 땅 위에 존재하는 것들이 부딪히며 교감을 하는 소리이기에
공중에 떠있는 아파트란 공간은 그 소리가 도달하기에 종종 너무 높이 솟아 있는 것이다.


*위 사진 : 한옥생활체험관의 밤.

한옥체험관의 깔끔한 이부자리 속에서 불을 끈 채 빗소리를 들었다.
웅장하면서도 잔잔한, 거친 듯 하면서도 세련된 음률의 빗소리는 우리를 편안한
잠으로 이끌었다. 한 밤중에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여전히 들리는 빗소리에 괜히
안심이 되면서 다시 달콤한 잠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튿날 체험관에선 단출하지만 정갈한 아침 식사가 나왔다. 식사를 한 뒤에도 우리는
갈 곳이 없는 나그네처럼 전날과 같이 마당을 내다보며 방안에서 해찰을 부렸다.
식당 아주머니가 주는 바삭한 누룽지까지 얻어먹고서도 한참을 더 뒹굴 거렸다.
밤사이 기세가 꺾인 비는 부슬부슬 약해지다가 정오가 가까워오면서 서서히 그쳤다.


*위 사진 : 경기전과 그 뒷쪽의 전동성당.


*위 사진 : 풍남문 전경.


*위 사진 : 전주 객사. 현판에 쓴 '풍패지관'의 '풍패'는 중국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지명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비유한 말이다.

우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 초상화)이 봉안된 경기전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힌다는 전동성당, 풍남문과 전주객사 등을 돌아본 후
전주의 명물인 콩나물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전주를 여행하면서 음식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라도 전 지역이 그렇지만 전주 역시 맛의 고장이다.
꼭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식당이라도 일단 들어가면 최소한 실망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지금은 비빔밥과 한정식 그리고 콩나물국밥으로 유명하나 옛날에는
‘전주 팔미(八味)’가 있었다고 한다. 서낭당골의 파라시(음력 팔월에 나는 감), 기린봉의 열무,
오목대의 청포묵, 소양의 담배, 전주천의 모래무지, 한내의 게, 사정골의 콩나물,
서원 너머의 미나리가 그것이다. 물론 지금은 거의 찾을 수 없는 맛이겠으나 전주에서
먹는 콩나물국밥은 그래서인지 더욱 의미도 맛도 있었다.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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