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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2발리1

by 장돌뱅이. 2017. 8. 10.

2002년 10월12일 발리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202명이 숨졌다.
그중에는 한국인도 2명 있었다. 부상당한 사람도 수백명이었다.
아내와 발리 여행을 한 직후였기에 충격이 컸다.
더군다나 테러의 현장이었던 사리SARI 클럽은  여행 중 그 앞을 여러번 지나쳤었고 
이전 여행에서는 직접 들어가 맥주를 마시기도 했던 곳이었다.

숨진 사람들 중에 호주인들이 가장 많았다.(88명)
떠나오기 전 우리가 묵었던 호텔 해변에서 호주인들이 거창한 집단 행사를 했던 터라
아내는 그들 중 누군가가 변을 당했을 거라며 몸을 떨었다.

이 여행기는 그 때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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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발리를 위하여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은 세월에 부대끼면서 흉측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삶에 절망하여
‘나 돌아갈래’를 외치며 순수했던 옛날로의 회귀를 갈망했다. 그는 끝내 죽음으로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순수를 증명했다. 그래서 그는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실낱같은 희망만은
우리에게 남겨 줄 수 있었다.

발리의 한 카페에서 끔직한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고 한다.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와 함께
무려 2백 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도 스러진 것이다.

이제 발리는? 돌아갈 수 있을까? 옛날로. 한 달 전으로. 아니 일주일 전으로.
아니 끔찍한 폭탄 테러가 일어나기 일초 전의 모습으로.
그리고 “발리마저도!” 하는 안타까움과 당혹스러움이 참혹함을 더 크게 만든다.

“THIS IS A PARADISE THAT IS LOST FOREVER.
GOOD BYE! GOOD TIMES AND GOOD MEMORIES.“
어느 서양인이 인터넷에 올린 말처럼 우리는 이제 정말 발리에서의
‘아름다웠던 추억’과 '영원히' 작별하여야 하는 것일까?

발리의 소리. 발리의 냄새. 발리의 빛깔. 꾸따. 짐바란.
그리고 우붓.해지는 저녁 먼 바다와 하늘 위로 불타던 노을. 아내와 맨발로 걷던 해변.
발자국이 찍히던 고운 모래를 개구쟁이처럼 지우고 달아나던 파도.
발끝을 간질이던 보드라움. 야자나무 아래로 깔리던 저녁 연기와 사원의 향불 냄새.
제물을 이고 가는 행렬의 눈부시도록 정갈한 의상.
그들의 다정한 미소.
어두워가는 저녁 들판, 들려오던 개구리 울음소리며 동화처럼 날아다니던 개똥벌레들.

힌두사원의 탑 위에 손톱처럼 걸쳐있던 초생달.라마와 시타의 사랑을 춤으로 보여주던 밤.
가믈란의 흥겨운 가락 속에 가볍게 잡아본 아내의 손은 얼마나 사랑스러웠던가.
그 모든 기억들과 작별을 고하고 대신에 무엇으로 그 자리를 채울 것인가.

발리 스스로가 넘은 경계선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내와 나는 더 절망스럽다.
근대사의 여명에 총과 칼과 폭탄을 가진밖에서 온 ‘합리와 이성’은
그림과 춤과 음악뿐인 ‘야만의 발리’에 밀려왔다.
발리인들은 '뿌뿌딴의 칼'로 스스로를 찔러 쓰러졌다.

60년대 중반이던가. ‘진보와 혁명의 이념’이 신과 노동뿐인‘우매한 발리’를 깨우치러 왔다.
발리의 곳곳은 다시 피로 물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원격조정 최첨단 폭탄의 '깔끔한' 스위치 한방으로‘
전근대적 모습’ 거리를 ‘깨끗히’ 청소해 버렸다.아내와 나는 눈 먼 증오와 광기에 전율하고
그것을 만들어낸 '미끈하고 화려한' 논리들에 저주를 보낸다.

하여 돌아가야 하다고 외쳐야 할 것은 발리가 아니다. 발리는 늘 그곳에 그렇게 있어왔을 뿐이다.
우리는 곧 아내와 내가 여행을 했던 바로 엊그제의, 수십년전의, 아니 수백년전의 발리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우리와 시대, 그 모두가 진지하게 외칠 수만 있다면.
“나 돌아 갈래!!!



42. 행복하게 술 마시기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면서 흰 거품을 물고 해변으로 밀려가는 파도와 함께 발리의 공항에 내려앉았다.
착륙과 동시에 기내의 누군가 박수를 쳤고 아내와 나도 함께 따라서 박수를 치다 힘주어 손을 잡았다.
도착의 흥분은 짐바란 해변 숙소의 술자리로 이어졌다. 검은 바다의 파도소리가 분위기를 돋우었다.

밤이 깊으면서 짐바란 비치를 따라 우리처럼 잠 못 드는 불빛들이 살아나며 길게 늘어갔다.
멀리 해변의 끝에선 맑은 별빛 사이로 무수한 비행기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우리처럼 설렘과 기대로 내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행복한 아쉬움으로 멀어져 갈 것이다.
취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웃음이 헤퍼지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아내와 나는 작은 소리에도 크게 웃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43. 짐바란의 아침
아침.내가 다녀온 모든 해변에 바치는 행사. 아침 해변 달리기를 위해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섰다.
아내는 간밤의 과음 탓인지 아직 잠속이다.

짐바란은 서쪽으로 열려있으므로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는 없는 곳이다.
해변으로 나가자 어제 저녁 멀리 밀려나 있던 바다는 해변을 조금만 남긴 채 호텔 경계선 가까이까지 밀려와 있었다.
해변을 따라 고기잡이 배들이 돌아오는 포구를 향해 북쪽으로 달렸다.

포구는 몇 개의 호텔과 유명한 짐바란의 해산물 카페촌을 지나 한 참 위쪽에 있었다.
포구에 못 미친 곳에도 배들이 들어와 밤 동안 먼 바다에서 잡은 고기들을 부리고 있었다.
굉장히 큰 참치류의 물고기였다. 어린아이 키만한 고기를 배에서 내려선 정글도로 머리를 자르고
몸통을 통에 담아 어디론가 옮겨갔다. 해변 곳곳에 샌성 머리가 축구공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뒤이어 머리만 수거해가는 사람들도 있었
다.

배가 들어오는 포구에는 장도 함께 형성이 되어 있었다.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사이로
우리의 시장과 포구가 그런 것처럼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작은 함지박에 생선을 담아 놓고
고객과 흥정을 벌이는 모습도 낯익은 풍경이었다.솔직히 그들이 파는 생선의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잠자리의 비용으로 지불한 여행자로서 그들에게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며 생각하는 ‘삶’이나 ‘세상살이’란
어쩌면 허영에 가까운 얄팍한 감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감당하기 힘든 무거움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포구는 이방인 여행자와는 상관없이 활기찬 모습이었고
나는 방관자일지언정 어떤 진지함으로 그들의 모습을 담아두고 싶었다. 그것이 감정의 사치라고 하더라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에는 그런 감정을 맛보기 위함도 있지 않겠는가. 분명한 것은 보는 이의 입장에 관계없이
삶에 열심인 세상의 모든 모습은 감동적이고 사랑스럽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일은 아내를 깨워 이
곳에 다시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사람 속을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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