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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1발리6

by 장돌뱅이. 2017. 8. 9.

37. 어느 미국인의 생일 잔치
게녝 GENJEK은 함께 노래 부른다는 뜻으로 동부 발리의 전통 공연 양식이다.
옛날 롬복의 침략군을 물리친 뒤 있었던 승리의 축제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이가 태어났거나 결혼식 혹은 생일 등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공연을 하게 된다고 한다.
또는 여행객들의 요청이 있을 때 공연을 하는데, 신청한 사람은 3십만 루피아(약 33불정도)의
공연료를 지불해야 한다.
공연단원은 10명에서 15명 정도로 노래와 음악을 연주한다.

뽄독 바뚜르 인다의 주인 게데 GEDE와 그의 사촌 와얀 WAYAN도 공연단원이었다.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마을에 일이 있을 때 모여서 공연을 하는 것이 옛 우리 농촌의
농악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천국은 구리빛 근육의 건강한 노동과 신명나는 축제가 살아 있는 곳이다.

이 날 저녁 공연의 신청자는 띠르따강가에서 숙박업을 하는 미국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자축하기 위하여
3십만루피아를 내놓은 것이었다. 공연은 두시간 이상 걸리기에
보통 저녁 8시에 시작한다고 한다.
나는 저녁을 먹고 게데의 차편으로 물의 궁전 WATER PALACE 안에
있는 공연장으로 갔다. 관람료는 무료이다.


CAMPELL씨의 부인인 JANE이 함께 구경을 하겠다고 나서 동행을 하였다.
CAMPELL씨는 읽던 책을 마저 읽어야
한다며 나보고 자신의 부인을 잘 보살펴 달란다.
공연장은 사방이 트인 홀로 벌써부터 단원들이 전통 복장을 한 채 연습을 하고 있었다.
외국인을 포함한 구경꾼들도 제법 모여 있었고 동네 개구쟁이들이 홀안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부산을 떨어 댔다.
역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어야 잔치 분위기가 사는 법이다. 나는 공연장 입구의 가게에서 과자를 사다가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아이들과 어울리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공연을 신청한 미국인이 8시가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건너편 호텔의 커피숖을 세내어 거기서
'일차' 생일 파티를 진행하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노래소리가 조용한 시골 동네의 밤공기를 타고
전해져 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단은 연습을 멈춘 채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의자에서
잠들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모두 건너편 호텔을 해바라기하듯 바라 보고 있었다. 자신의 생일을 어떻게 즐기건
그건 그의 자유이긴 하지만 그의 요란스런 자축행사가 조금 오만불손하다고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
커피숖을 건너다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불만의 소리들이 나왔다.


옆에 있던 JANE도 그랬다.

"왜 저 미국인은 이렇게 거창한 생일파티를 하는 걸까요?"
"글쎄요. 아마 저 사람 이름이 빌 클린턴인가 봅니다? 아니면 부시던가."

결국 우린 9시가 넘어서까지 기다리다 공연의 시작을 보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공연단원인 게데 GEDE 도
그 미국인에게 약간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이 날 저녁의 공연을 포기 하였다.
나도 미국인의 방자한 행동에
기분이 상했지만 그를 기다리다 공연장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위안이었다.
반딧불은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만 서식하는 곤충이다. 까만 공중을 휘젓고 다니는 빛나는 작은 점은 그대로 어린 시절의
추억이며 고향 마을의 전설 같았다.
숙소에 돌아와 의자에 앉아 다시 검은 밤을 마주하게 되었다.
옆방의 뉴질랜드인 부부들도 모두 방으로 들어가자 밤은 조용함과 함께 한층 더 깊어졌다.



38. 장터거리에서 유명인사가 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다클링 BUDAKELING으로 향했다.
부다클링은 전통적인 대장간이 아직 존재하는 장터거리에 늘어선 매우 작은 마을이다.
장이 서는 시간은 매우 짧아 오전 8시면 벌써 파장이다. 나는 숙소를 나서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침 공기가 너무 상쾌하여 마구 달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채 100미터를
달리지 못하여 나는 다시 걸어가야 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한 무리의 개들이 달음박질하는 나를 쫓아오며
짖어대기 시작해서다. 개 짖는 소리가 이른 아침의 마을을 온통 뒤 덮었다.
어느 놈은 내가 걸어가고 있는데도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기까지 하였다.

'이런 개스키들이......'
나는 결국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개들의 기세가 매우 사나웠다. 어느 작은 여자 아이가 집에서
나와 짖어대는 개들을 쫓아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 서있어야 했을지 모른다.
발리에는 정말 개가 많다.



부다클링은 20미터쯤되는 거리 양쪽으로 각종 가게가 들어서 있는 정말 작은 장터였다.
그것은 발리 아가 BALI AGA처럼 여행객에게 상품을 팔고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 거리가 아니라 발리인들의
생활이 실재하는 장소였다. 그래서인지 '민속촌류'의 마을에서는 느낄 수 없는 활기가 넘쳐 흘렀다.
그 거리에서 나는 단연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유일한 외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초입에 있는 대장간에서 반대편 끝에 있는 작은 잡화가게까지 눈을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상냥한 미소를 보내며 반겨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몇마디의 인니어에도 그들은 신기해하며 즐거워했다.
나는 대장간에서 담금질을 하며 사진찍는 것을 허락해준 노동자에게 시원한 음료수라도 힌병씩 돌리려고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가 그 작은 장터거리를 한바퀴 도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여
특별히 어느 한 곳에 음료수를 사줄 수 없었다.
대신에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인 할머니에게서 바나나 잎에 싸주는 가도가도 GADOGADO를 사서 먹었다.

특별한 이유없이 유쾌·상쾌·통쾌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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